본문: 창세기 42:1-4
조선 중기의 문인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은 명문 사대부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진주 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 김시민(金時敏) 장군이었습니다. 이런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자 혜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혜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따랐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의무가 과거 급제였습니다. 과거에 급제하기만 하면 집안 어른들이 끌어주고 밀어주어 출세의 길이 열렸지만,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본인의 몫이었습니다. 본인이 공부에 매진하여 시험에 합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심하게 앓았습니다. 그로 인해 기억력이 남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집안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양자를 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김치(金緻)가 급히 달려와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가르쳐 보겠다며 기회를 구한 것입니다. 허락을 받은 아버지는 이후 십 년 동안 다른 일은 모두 젖혀두고 오직 아들의 교육에만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도 공부에 진전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침내 포기하는 심정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제 더 이상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거꾸로 받아들였습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홀로서기를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재산이 있었기에 생계 걱정 없이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볼 때마다 번번이 낙방했지만, 서른아홉에 드디어 소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소과에 합격했다고 해서 벼슬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과에 합격해야 했습니다. 소과에 합격하는 데 마흔 언저리까지 걸렸으니 언제 공부해서 대과에 합격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며 매일같이 정진하더니, 마침내 환갑 언저리가 되어서야 대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습니다.
벼슬길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학문에 정진하며 책을 쓰고, 시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가 조선 팔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효종 임금이 그의 시를 무척 좋아하며 이런 평가를 내렸습니다. "김득신의 시를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자연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시를 잘 쓰는가." 효종의 칭찬을 받은 시인이었기에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글을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김득신은 자기 묘비에 새길 글을 스스로 준비했습니다. 그 묘비의 핵심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재주가 남들만 못하다고 해서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열심히 정진하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세상사의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이 분의 말대로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열심히 정진하고 최선을 다하면 조금씩 발전하고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 바라시는 것도 믿음의 성장이 아니겠습니까. 발전하고 성장하며 조금씩 변화해 가는 우리 믿음의 성장을 하나님은 보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성장을 이루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성장하지 못한 채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삶을 돌이켜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칠 년 풍년과 칠 년 흉년을 예고했습니다. 풍년의 시간에 오분의 일씩 곡식을 모았습니다. 온 애굽을 두루 순찰하면서 곡식을 거두어 창고를 지었습니다. 흉년에 대비한 것입니다. 드디어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극심한 흉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바로에게 달려가자, 바로는 요셉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재난 극복의 총책임자인 총리로서 이 위기를 하나하나 풀어갔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미 대비가 되어 있었기에 차분하게 흉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애굽이 아니라 주변 근동 지방의 나라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도 예고 없이 흉년이 닥쳤습니다. 요셉 같은 인물이 없었기에 풍년과 흉년을 관리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요셉의 형제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에도 흉년이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크나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고, 이제 곧 굶어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이때 그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창 42: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창 42:2)
아버지 야곱은 이때 나이가 백삼십 세 언저리가 됩니다. 이 고령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을 모아놓고 책망합니다. 서로 바라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가서 곡식을 사 오라고 다그칩니다. 야곱은 어떻게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텔레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 중에 발 빠른 사람들이 이미 소문을 듣고 애굽에 가서 곡식을 구해왔습니다. 야곱은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목축하는 사람들이니 풀이 마르고 짐승들이 굶어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니 땅이 갈라지고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다른 집 사람들은 다 가서 곡식을 구해오는데, 이 사람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의 아들들에게서 심각한 무기력을 봅니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도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무기력을 정신병리학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무기력이 오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우리가 죄를 지을 때는 내가 선택해서 짓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를 짓고 또 짓다 보면 사탄이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죄는 인격처럼 성장하고 자라나며 내 영혼을 잠식해 들어옵니다. 지속적으로 죄를 지으면서 이 문제를 회개하지 않고, 털어놓지 않고, 해결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발목이 잡힌 채로 살게 됩니다. 사탄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을 갉아먹다가 결국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육체까지 잠식해 들어갑니다. 죄 문제를 일찍 해결하지 못하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들이 가진 심각한 죄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동생 요셉을 팔아넘긴 죄입니다. 시간 계산을 해 봅시다. 이 시점에서 요셉의 나이는 적어도 삼십팔 세 이상이 되었습니다. 따져 보면 요셉은 십칠 세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삼십 세에 애굽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칠 년 풍년이 지났으니 삼십칠 세입니다. 풍년이 끝나고 흉년이 시작되었을 때, 흉년 일 년 차라면 요셉의 나이가 삼십팔 세이고, 이 년 차라면 삼십구 세입니다. 그렇다면 이 형제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하나님께 토설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안고 있었던 시간이 최소한 이십일 년이라는 뜻입니다. 십칠 세에 동생을 팔아넘겼으니, 요셉이 삼십팔 세가 될 때까지 이십일 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가슴속에 그대로 묻어둔 것입니다. 이 죄가 썩어서 악취를 풍기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털어놓고 해결하여 죄 사함을 받고 자유를 얻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자기 영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썩어 비틀어지고 문드러져 내린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혼만이 아니라 몸까지 못 쓰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은 두 가지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고, 둘째는 내 죄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회개했다면, 성경은 회개를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시니, 그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은 아버지에게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사실 동생 요셉이 짐승에게 해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가 요셉을 팔아버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아버지께 진심어린 사과를 구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