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41:33-40
대구시 중구에는 달성공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금은 동물원과 산책로로 사용되고 있지만, 삼국시대 신라 시기까지 이곳은 달구벌의 터전이었습니다. 군사들이 그곳에 모여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고, 이들은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그곳에 거주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즉위하신 후 전국의 전략적 요충지에 군사 기지를 재건하는 사업을 추진하셨는데, 달구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다시 성을 쌓고 군사 기지를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는 달성 서씨 가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문중의 어른이 되는 서침(徐沈)이라는 분을 불러 세종대왕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주해 주시면 지금 살고 있는 땅보다 세 배 넓은 땅을 드리겠고, 이주 비용도 넉넉히 지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서침 어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라가 필요로 하는데 우리가 땅을 받고 돈을 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니, 돈도 땅도 받지 않고 알아서 이주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지금 달구벌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이니, 가을에 환곡을 돌려받으실 때 환곡 이자의 절반을 면해 주십시오." 세종은 이 청을 흔쾌히 수용했습니다. 땅을 대가 없이 내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거니와, 세종의 애민정신과 서침 어른의 백성을 향한 마음이 깊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성군 중의 성군이십니다. 그러니 세종 이후의 왕들도 이 약속을 지속적으로 지켜 나갔습니다. 사백 년이 넘도록 조선 후기까지 달구벌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서침 어른이 돌아가신 뒤, 달구벌 성의 사람들은 그 공덕을 기리고자 구암서원(龜巖書院)을 세웠습니다. 이 서원의 터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관리하고 감독해 왔는데, 훗날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시에서 땅값을 보상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달성 서씨 문중에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조상도 나라가 필요할 때 땅을 그냥 내어드렸는데, 공공의 사업을 위해 필요한 땅에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육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달성 서씨 문중은 그들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달성 서씨 문중의 어른이었던 서침은 백성들의 가난에 대해 늘 깊은 고민을 품고 있었습니다. 나라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가난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걱정이 컸는데, 기회가 오자 자신이 가진 땅을 희생하여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대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는 법입니다. 희생 없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애굽의 흉년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 대안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과연 이 시대에 대안이 되는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시대에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인지 함께 고민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칠 년 풍년 뒤에 칠 년 흉년이 온다고 해석합니다. 풍년도 칠 년이고 흉년도 칠 년입니다. 그런데 흉년의 기간이 극심하여 앞선 풍년의 기간을 모두 잊어버리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흉년이 너무 심하여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요셉이 바로에게 꿈을 해석해 준 내용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해석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까지 제시해 줍니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창 41:33)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세우라는 것이 첫 번째 대안이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풍년을 관리하며, 흉년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두 번째 대안은 조직과 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창 41:34-36)
풍년과 흉년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시스템, 이 두 가지는 고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시스템은 잘 갖추어져 있고 조직은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운영할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없다면 조직과 시스템은 무용지물입니다. 반대로 사람은 잘 준비되어 있는데 체계가 없고 질서가 없고 시스템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풍년을 관리하고 흉년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과 시스템을 갖추라고 제안한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내놓은 이 대안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그 첫 번째는 풍년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교훈입니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가 지나도 풍년이 이어집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농사 지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거두어들입니다. 복받은 땅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감각은 무뎌졌습니다. 언젠가 다시 흉년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풍요가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러합니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기쁜 날이 있으면 눈물 나는 날이 있습니다. 건강할 때가 있으면 병드는 때가 있고, 풍년의 시기가 있으면 흉년의 시기가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한 등락을 거듭하는 인생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풍년이 칠 년 있으면 흉년도 칠 년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이것은 반드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흉년의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풍년의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이 교훈을 깨닫지 못하면, 언젠가 갑자기 찾아올 흉년의 때에 우리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그 교훈을 주지 않습니까? 이 땅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풍년의 시간들을 오랫동안 누렸습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가운데 그 시절에 신앙생활을 했던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시절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교회들에게 주신 풍년의 기간이었습니다. 십자가만 꽂으면, 깃발만 꽂으면 사람들이 모여들던 부흥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풍년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교단의 교세가 약 삼백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난 오늘, 교세 통계에 의하면 약 이백삼십만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정확하지 않으니 실제로는 더 적을 것입니다. 십 년 사이에 칠십만 명이 어디로 갔습니까? 이십 대와 삼십 대 젊은 세대의 교세 감소는 훨씬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풍년의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이 풍년의 시간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사회와 젊은 세대를 향해 신뢰를 쌓아 놓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신뢰를 갉아 먹었습니다. 삼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땅의 교회들이 해 온 일을 보면, 대형교회들의 교회 사유화, 정치 선동, 극단적인 분열이 교회를 휘감았습니다. 교회의 재정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 길이 없었고, 합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교회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뢰가 추락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풍년의 시간이 영원할 줄 알고 살았던 그 참혹한 결과를 지금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