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4:9-12)

조지 뮬러(George Müller)는 1805년부터 1898년까지 93년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는 독일 태생이었고, 세무공무원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굉장히 부유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린 시절은 유독 탈선과 방황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는 술을 끊지 못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임종조차 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랬던 그가 우여곡절 끝에 할레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대학에서 우연한 기회에 찾아간 학생들의 기도 모임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 이후에 완전히 달라진 삶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이 친구가 조지 뮬러가 맞느냐고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서 유대인 선교 사역에 힘썼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꿈꿨던 대로 그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어서 런던을 떠나 브리스톨이라는 도시에 정착하는데, 그곳에서 그는 성도 여섯 명이 남은 교회를 목회하기 시작합니다. 성도가 여섯 명밖에 없었는데, 그러나 그는 마치 만 명의 교인을 섬기듯 뜨겁고 열정적으로 목회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하며 교회는 그의 기도와 열정,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불일 듯이 부흥하고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사역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을 때, 그때 브리스톨에 전염병이 휩쓸어 닥쳤습니다.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고, 부모를 잃고 갈 곳 없어진 아이들을 교회가 책임져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부터 시작해서 일흔이 될 때까지 약 사십여 년 동안 고아원 사역에 전념합니다. 사십 년 동안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그는 돈 한 푼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아들을 키우고 양육할 재정으로 그 당시 영국 돈 150만 파운드를 사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부어 주셨습니다. 이 돈은 오늘날 우리 돈으로 환산해 보면 약 1,300억 원 이상이나 되는 거대한 거금입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약 만여 명 이상의 고아들을 길러 내었고, 기독교 학교를 일곱 개나 세웠습니다. 그 학교에서만 이천여 명이 넘는 기독교 인재가 배출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50여 명이 넘는 선교사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성도 여섯 명밖에 없었던 교회에 부임했고, 그는 목양하느라 수중에 돈 한 푼 없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부어 주셨을까요? 그가 사심 없이 일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믿음으로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웃 사랑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이웃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해야 되는 일이 이웃 사랑임을 깨닫고 그 일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조지 뮬러의 숫자에 열광합니다. 5만 번 이상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 1,300억 원이라는 돈, 만여 명이라는 고아들의 숫자, 일곱 개라는 학교의 수, 이천여 명이 넘는 인재들의 숫자, 150여 명이 넘는 파송한 선교사들의 숫자. 그런데 그 숫자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더한 축복도 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심을 다해서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정을 다하면, 하나님은 그 이상 혹은 그보다 더 넘치는 축복까지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서 마땅히 돌보고 섬겨야 될 대상이 누구인가를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크나큰 하나님의 심판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과연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묵상하고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가인은 예배 드린 후에 동생을 살해합니다. 예배 드린 후에 어떻게 동생을 죽일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살인의 충동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를 책망하시고 또 그에게 용기도 주셨습니다. 너 안에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듣지 않습니다. 사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동생을 살해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동생을 죽인 가인을 찾아오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하신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1-1. 다시 주어진 기회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은 가인에게 다시 한번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실 때 바로 심판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어떤 흉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참 좋은 분이십니다. 가인의 아버지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의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때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찾아오셔서 아담을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다시 한번 나와서 그 앞에 물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참 좋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 짓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때, 그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즉결 처분을 내리지 않습니다. 찾아오십니다.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통해서 회개하게 하시고, 환경을 통해서 들려주시고, 성경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의 찔림을 주십니다. 그때 돌아와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하나님의 자비와 하나님의 노하심을 더디 하시는 하나님의 이 귀한 성품을 우리는 기만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아 주시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성품을 역이용해서 그 기간 동안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 기다려 주시겠지, 어제도 괜찮았는데 오늘도 괜찮을 거야, 이렇게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니까 내일도 또 짓자.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기만합니다.

1-2. 기다림에는 끝이 있다

그런데 기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기다림과 노하심을 더디 하시는 성품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심판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두 가지만 한번 떠올려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악이 관영한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그 성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 성을 한번만 굽어 살펴 달라고, 이 성에 의인 오십 명이 있으면 심판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기도하며 씨름해 나갑니다. 사십오 명, 사십 명, 삼십 명, 이십 명, 십 명까지. 하나님은 그 기간 동안 심판을 유예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다가 결국은 그 성에 의인 열 명이 없음으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비를 내려서 그 성을 결국은 심판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고 기회를 주셨지만 돌이키지 않았을 때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즉결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두 번이나 주셨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요나를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기원전 8세기경입니다. 요나가 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질 것이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백성들까지 모두가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 소식을 듣고 다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옷을 찢고 재 위에 앉아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심판을 유예하시고 돌이키셨습니다.

그런데 채 백 년이 되지 않아 앗수르는 다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기원전 7세기의 선지자 나훔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나훔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훔서 1장 3절입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는 이시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이 말씀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잘 보시면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했는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훔을 통해서 앗수르 민족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나는 노하기를 더디 한다, 백 년 동안 너희를 기다려 주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죄 짓고 다시 악을 행하면 나는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고 심판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앗수르는 나훔의 이런 경고를 곧이 듣지 않습니다. 결국 앗수르는 기원전 612년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처참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