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마음 (막 4:1-20)

대지라는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은 펄벅 여사가 쓴 동풍 서풍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뤠난이라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대단히 중국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남편은 집안끼리 정혼하여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부인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부인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 그토록 좋았습니다. 그 남편을 위해서라면 살수록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 여인을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한 가지가 바로 여인의 전족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발을 꽁꽁 묶어 왔던 그 전족을 남편은 풀어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전족은 자신의 정성이고 부끄러움이며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여인은 남편을 더욱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전족을 풀어서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남편 앞에서 전족을 풀며 기형적으로 뒤틀린 자신의 발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정성이나 다름없고 보여주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었지만, 여인이 남편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보여준 귀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남편은 여인을 끝까지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 소설의 비극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에게 하신 모든 것은 우리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그래서 우리 인생에게 주님의 그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시고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퍅한 우리는 주님에게서 내가 필요한 것만을 골라서 얻으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강퍅하고 완악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모든 걸 다 주었는데 너희들은 내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오느냐?" 주님 앞에 나오는 자들의 네 가지 마음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주 앞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왔습니까? 주님께서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우리 인생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며 주신 그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의 마음도 주께서 원하시는 마음으로 함께 빚어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수많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은 각자가 다 다양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옵니다. 겉보기에는 다 멀쩡한 것 같은데 속마음과 생각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네 가지 마음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옥토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의 말씀을 아주 짧은 말씀으로 주님께서 요약해서 말씀하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여기 씨를 뿌리는 자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어디에다 씨를 뿌리십니까? 농부는 밭에 씨를 뿌리지만,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다 씨를 뿌리십니다. 여기 이 씨라고 표현된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말씀을 아주 연약하고 작은 씨앗에 비유하셨을까요? 주님의 말씀이 귀하고 아주 존귀하고 놀랍기 때문에 이 말씀을 황금으로 비유하든지 엄청난 건물이나 집으로 비유하면 좋았을 텐데 왜 작고 연약한 씨앗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이 씨앗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황금이나 거대한 건물이나 집은 등가의 가치로 물건을 교환할 수는 있으나,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작은 씨앗이지만 이 씨앗이 떨어지는 땅의 상태에 따라서, 그리고 그 씨앗을 가지고 농사짓는 농부의 수고에 따라서 씨앗은 얼마든지 자라서 큰 나무가 될 수 있고, 그 큰 나무는 엄청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씨앗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생명 있는 씨앗이 떨어지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말씀을 내가 받았는데 이 생명을 받아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찌워 영광을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 길가와 같은 마음

그 첫 번째 마음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첫 번째 마음은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땅을 많이 밟으면 땅이 다져지고, 또 다니면 또 다져지고, 그래서 씨앗이 떨어졌는데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한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씨앗이 땅에 스며들지 못하니까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와서 씨앗을 낼름 주워 먹어버렸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바로 길가 같은 마음은 분주한 마음, 복잡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분주하다고, 바쁘다고, 바빠서 죽을 것 같다고,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심지어는 죽을 시간도 없다고 그렇게 바쁘다고 많이 말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바빠도 자기 할 일은 다 하고 살아갑니다. 맛집이 있으면 오랜 시간을 들여 맛집에 가서 밥도 먹고 오고, 동네에 멋진 커피숍이 오픈을 했다고 하면 거기 가서 커피도 마시고 와야 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바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바쁘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는 시간을 쓰는데 싫은 일은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주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최우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다음 그다음 후순위여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저 밑바닥에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한 시간 예배드리고 말씀 듣는 것조차 나는 너무 바빠서 마음이 분주하다는 말씀입니다.

몸만 앉아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서 바쁜 것 다 정리하고 정돈하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장 우선순위에 말씀 듣는 자세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느냐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라고 하는 두 자매의 집을 방문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언니였던 마르다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합니다. 동생이었던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보니까 자기 여동생이 하나도 도와주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 이 아이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고 하십시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하라. 네 동생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 좋은 편, 정말 좋다고 하는 것, 주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신 것, 이것은 말씀 듣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그 외에 어떠한 것도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이 우리 마음에 떨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 나무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면, 분주함을 정리하시고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의 말씀을 세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돌밭과 같은 마음

두 번째 마음입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함으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문제는 돌밭, 흙이 얕은 돌밭입니다. 이 돌밭이 있는데, 이런 마음은 이 돌을 신경 쓰지 않고 위에다가 흙을 얕게 깔아 놓았습니다.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흙이 얕으니 당장 싹이 납니다. 하지만 뿌리는 내리지 못합니다. 그 안에 돌이 있어서 뿌리가 내려가다가 돌을 만나서 그만 말라버립니다. 해가 나면 타서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런 마음은 그 마음의 심각한 큰 돌덩이들을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의 돌을 가지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