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자-2

본문: 창세기 39:5-9

우리는 조선 시대를 '500년'이라는 말로 익숙하게 부릅니다. 그러나 한 나라가 500년 동안 존속하며 유지·발전했다는 사실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하루아침에 왕이 바뀌고 한 나라가 100년 이상 지속된 사례조차 드물 정도로 역사의 흐름은 급변합니다. 그럼에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을 지속했다는 것은 그 안에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뛰어난 왕이 연속적으로 등장한 것도 아니고, 탁월한 신하들이 끊임없이 배출된 것도 아닌데 이 사회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의 구성원들이 저마다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보장사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알릴 보(報)' 자에 '모양 장(狀)' 자를 써서 보장(報狀)이라 했습니다. 변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중앙의 관청이나 주요 인물에게 알리는 사람을 보장사라 불렀습니다. 조선의 법전에도 보장을 두도록 명시하고 있었으며, 관에서도 보장을 두어 변방의 소식을 보고받았고, 부유한 이들도 각 지방에 보장을 두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유명한 보장사 가운데 한 사람은 합천에 살고 있었는데, 합천에서 한양까지 건강한 남성이 아홉 날을 걸어야 할 길을 하루에 300리, 곧 120km를 걸어 사흘이면 주파했다고 합니다. 보통의 보장사는 자신의 평생 절반을 길 위에서 보낼 정도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변방 외적의 침입을 중앙에서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착호인(捉虎人)'이라는 직업도 있었는데, 호랑이를 잡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민간에서 호랑이를 잡는 착호인이 있었고, 동시에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부대도 있었습니다. 태종은 착호갑사 부대를 임시 편성했고, 세종 시절에는 이를 정규군으로 편성하여 운영했습니다. 당시 호랑이가 민가에 출몰하여 백성들을 해칠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착호갑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 180보 되는 거리에서 화살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어야 했고, 양손에 각각 30kg 정도의 무게를 들고 단숨에 100보를 달릴 수 있어야 했습니다. 힘과 기술을 겸비해야만 착호갑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아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호랑이 가죽을 하사했는데, 그 가죽 하나로 한양의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착호인이나 착호갑사, 보장사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민간에도 촘촘한 안전망이 구축되었고, 조선이라는 사회는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믿음의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성실함으로 자기 자리를 잘 감당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복을 누리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주변에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형통한 자로, 믿음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면 우리 가정과 일터, 우리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을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분리하셨고, 그는 형제들에게 팔려 애굽에 노예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몰락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 길이었기에 복된 길이었습니다. 요셉이 형통했던 것은 당면한 어려움을 믿음으로 돌파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탁월했던 점은 과거의 불행에 매여 현재를 망치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염려로 현재를 낭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눈앞에 당면한 현실을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아낸 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어지는 본문은 그 형통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이 불러온 복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 39:5)

보디발의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그 밭과 집안 전체에 하나님이 주신 복이 가득 차고 충만하게 넘쳤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보디발 집에 복을 주신 것은 보디발이 복받을 일을 했거나 그가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요셉 때문에, 요셉을 위해서, 요셉 한 사람을 보시고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면, 그는 철부지였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열일곱 살 소년으로 살 때 아버지가 채색옷을 지어 입혔고, 형들 중에서 가장 귀하게 자랐습니다. 꿈을 꾸면 그 꿈 이야기를 형제들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한 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철부지였습니다. 아버지가 채색옷을 지어 입히고 세겜에 가서 형제들이 양 치는 것을 살펴보라고 했을 때, 그 불편한 옷을 입고도 세겜까지 갔다가 도단까지 찾아가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 왔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면서 그곳에서 큰 살림을 맡아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살림을 놀랍도록 잘 운영했습니다. 그 집에 큰 복이 임하고 안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형통이라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 잘한 것입니까? 갑자기 없던 지혜가 생겼거나 경영 철학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에게 갑자기 재능이 더해진 것이 아니라,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50 정도 된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산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50 이상은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면 50이 아니라 100, 그 이상도 이룰 수 있습니다. 내 능력 이상의 일을 요셉의 삶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니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 일 자체에 힘쓸 것이 아니라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힘은 힘대로 쓰는데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복되게 합니다. 요셉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서 은혜를 받으니 그가 살고 있는 보디발의 집 전체가 복을 누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복을 누리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셉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복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2-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사람, 아브라함이 가는 모든 길에서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된 사람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복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가족을 사랑한다면, 내 가족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 흘러넘치기를 바란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이 우리 가족에게 흘러들어갑니다. 일터에서도 한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바로 서면, 하나님이 그 사람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던 것처럼 그 일터에도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인 동시에 요셉에게 주신 은혜였고, 동시에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나 한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 나만 복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을 형통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되던 중이었습니다. 그가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탔는데, 그 배에는 276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배 안의 물건을 모두 바다로 던져도 배의 흔들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