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자-1

본문: 창세기 39:1-5

캐나다의 인류학자 리처드 리(Richard Lee)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근처에 사는 부시맨 부족과 3년을 함께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인류학자로서 그는 부시맨과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이들의 삶을 연구했습니다. 문명 사회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며, 공통점은 무엇인지, 문명 사회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또 그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는지 등을 3년 동안 면밀히 연구했습니다.

3년이 흘러 충분히 배웠다고 판단한 그가 본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3년을 함께 살았으니 정이 들었을 것입니다. 헤어지면서 그동안 이방인인 자신을 잘 거두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소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소를 잡고 잔치를 벌이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이 고마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 사람 두 사람 돌아가면서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정도 가지고 우리 모두가 먹을 수 있겠느냐고, 너무 적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평소 이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어서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모자란다고 하니 소 한 마리를 더 잡으려고 수소문했지만, 갑자기 어디서 소를 구해 올 수 있겠습니까.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그냥 해보자 하고 지켜보았더니, 잔치가 끝날 때까지 전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넉넉하게 잘 먹고도 남았습니다.

괜히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잘 먹고 즐겁게 잔치를 할 거면서, 왜 그렇게 퉁명스럽게 불평을 해댔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족장이 "그건 우리의 풍습"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를 들어 보니 이러합니다. 부시맨 부족은 원래 사냥과 수렵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냥을 하다 보면 어떤 한 사람이 공을 세우게 됩니다. 작은 짐승부터 큰 짐승까지 잡아오는데, 어떤 사람이 잡은 짐승은 부족의 일주일 양식이 되고 어떤 것은 한 달 먹을 양식이 됩니다. 한 달 먹을 양식을 잡아온 사람은 부족의 영웅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저마다 칭찬합니다. 네가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포식하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치켜세웁니다. 그러면 그 칭찬이 다음에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칭찬받은 사람은 넘치게 열심을 냅니다. 자기가 위험한지도 모르고, 목숨을 걸고, 위험한 자리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지켜주기 큰 공을 세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퉁명스럽게 대하고, 비난하면서 공을 세운 사람의 교만을 꺾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교만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이 리처드 리에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내려감 속에 감추어진 동행

우리 주변을 보면 실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능력이 모자라서 실패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능력이 모자라면 실패도 크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큰 실패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교만 때문에 무너집니다.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그 성공에 주변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주는 말에 동기부여를 받아, 죽을 줄 모르고 위험을 안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결국 실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일수록 교만을 꺾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교만을 다루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시는데,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주시면 교만이 다루어집니다. 고통을 겪고 어려움을 건너가면서 내적으로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을 함부로 과신하지 않게 됩니다. 고통을 겪다 보면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였구나, 나는 참 부족하고 모자란 존재였구나 하면서 스스로 조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이 요셉을 다루어 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아버지 야곱에게 사랑받던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그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에게 장자권을 부여했습니다.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다루시는 방식은 구덩이에 집어넣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 노예로 팔리게 하셨습니다. 죄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요셉이라는 한 사람을 다루어 가시고, 그를 내면으로 단단하게 만들어 가셨습니다.

창세기 37장은 야곱이 요셉을 사랑했던 이야기, 그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히고 장자권을 준 말씀입니다. 요셉은 두 번의 꿈을 꾸었는데, 꿈을 가감 없이 형제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형제들이 미워합니다. 결국 애굽 노예로 팔려갑니다. 창세기 38장은 유다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밥먹듯이 어기는 유다의 모습과,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던 다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39장에 이르러 본격적인 요셉의 고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창 39:1)

애굽 노예로 팔려간 요셉, 그의 주인이 된 사람은 보디발이라는 인물입니다. 성경은 그를 애굽 왕 바로의 친위대장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호실장이었습니다. 대단한 권세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보디발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애굽에 내려갔다"는 표현입니다. '내려가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라드'(יָרַד)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요나서에서도 핵심 주제어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욘 1:3)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욘 1:5)

'내려가다'라는 말이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쓰입니다. 요나서에서 이 '내려감'은 영적인 타락과 침체를 의미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요나는 거부하고 욥바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가기 위해 내려간 이 '야라드'는 영적인 타락을 의미합니다. 내리막길로 계속 내려가는 영적 타락,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배 밑바닥까지 내려가 버렸습니다. 배 밑바닥에서 그는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갑니다. 풍랑이 일어나 배가 깨어질 듯한 위기 속에서도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니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단어 '야라드'가 요셉에게도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애굽에 내려간 것, 이것도 영적인 타락이고 영적인 침체일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이제 망해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요나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야라드', 전혀 다른 '내려감'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2)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의 '내려감'은 망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타락도 아니요, 영적인 침체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심으로 이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확실한 동행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볼 때 지금 요셉은 어떤 상태입니까. 망한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사랑해서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는 열두 형제 중에 장자권을 일찍감치 넘겨받았습니다. 형제들 위에 군림하며, 형제들이 노동하고 목축할 때 그것을 감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덩이에 빠졌다가 채색옷이 벗겨지고, 노예가 되어서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망한 것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노예로 팔렸는데 어떻게 올라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과 함께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