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은 믿음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인권이나 자유 같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태어났으니 이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희망 없이, 소망 없이, 흘러가는 대로 끌려가는 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이후로 자유와 인권과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온 세상 방방곡곡에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은 인류 사회의 변곡점이 되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혁명의 아름다운 대서사시를 자신의 탐욕으로 가득 채우고 피로 얼룩지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로베스피에르입니다.
로베스피에르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정치적 경험도 거의 없는 사람이었고 의회 내 소수파인 자코뱅 클럽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혁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루이 16세가 자신의 전제 군주제를 내려놓고 왕도 법에 의해 통치받겠다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이로써 혁명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원성이 있었습니다. 루이 16세가 문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그를 잡아 죽여 달라고, 그리고 그에게 부역한 여러 사람들을 함께 죽여 달라고 백성들의 원성이 있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이 백성들의 원성을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는 원래 법률가였고 법을 전공한 사람이라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혁명재판소를 세우고 자신이 혁명재판소장의 자리를 차지해 버립니다. 그리고 백성의 편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백성들을 선동합니다. 우선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때부터 공포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공포 정치 기간 동안 파리에서만 약 2천 600여 건의 사형이 집행되었고 프랑스 전역에서 16,500여 건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인 프랑스 혁명, 자유 평등 박애의 이 위대하고 숭고한 인류를 향한 대서사시가 한낱 인간의 탐욕으로 피로 물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며 로베스피에르는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습니까. 잔칫집에 죄를 뿌리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데 이 사람은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나옵니다. 그 살인 사건은 형이 동생을 죽인, 형제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더 경악하게 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예배를 드리다가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얼마나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 우리가 피조물 된 자의 의무로, 피조물의 권리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피로 얼룩지게 한 악한 사람 가인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예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아닌 죄를 향한 욕망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함께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쫓겨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꼭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하시고 심판하실 때 하셨던 말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이 소망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고 바꾸어 주었습니다.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쫓겨나는 와중에도 하와라는 이름을 줄 만큼 그들은 생명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쫓겨나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얼룩진 땅을 밟고 먹고살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대로 우리에게 자손이 태어날 것인데 그 자손을 잘 교육하고 양육하고 말씀대로 가르치면 그들이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탄의 권세를 파괴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소망을 아담과 하와는 마음에 품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기대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첫째 아들 가인이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 이어서 아벨까지 이 가정에 두 명의 자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그들에게 주어진 이 생명을 어떻게 키웠을지를. 얼마나 열심히 길렀겠습니까? 먹이고 입히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대로 이들을 말씀 안에서 잘 양육해야 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그 시대에 실패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낙원의 땅을 잃어버리고 쫓겨난 존재가 되었지만, 너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어디에 걸려 넘어졌는지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알리고 가르치며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사는 법을 일러 주고 또 세워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났습니다. 3절 말씀은 "세월이 지난 후에"라고 합니다. 얼마나 세월이 지났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몇 년이 흘렀는지, 얼마나 세월이 지나서 예배 드릴 수 있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월이 지나서 그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고 직업을 가지게 됩니다. 가인은 아버지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농사라는 직업을 물려받았고 아벨은 목축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세월이 흘렀다는 말은 이제는 그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서 독립적인 신앙 인격으로 서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가 매년 세례 입교식을 거행합니다. 유아세례는 어린 시절 스스로 하나님께 신앙 고백을 하지 못할 때 부모가 대신 신앙고백을 하고, 사랑하는 이 자녀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돌보겠습니다 하는 결단입니다. 입교는 이제는 스스로 내가 신앙고백을 합니다, 독립된 신앙 인격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겠습니다 하는 결단입니다. 세월이 지났다는 말은 가인과 아벨이 이제는 독립된 신앙 인격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단독자로 서기 전까지 아담과 하와는 그들에게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신다고 잘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들은 직업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독립된 신앙 인격체로 단독자로 예배 드립니다. 그런데 이 예배가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줄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3절에서 5절 전반절을 보시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궁금해집니다. 하나님은 왜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기를 좋아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제물로 짐승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좋아하시니까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다고. 그런데 이것은 예배도 오해한 것이고 하나님도 오해한 것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을 보면 짐승을 잡아 태워 드리는 번제도 있지만 곡식을 가루로 곱게 빻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직업의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든지 그 현장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농사 짓는 사람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목축하는 사람은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어떤 예물을 어떤 종류로 가지고 나오든지 그것을 문제 삼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거부하셨는가?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 주지 않습니까? "아벨과 그 제물은", "가인과 그 제물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제물 앞에 사람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예배드리는 자의 신앙 인격이고 그의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받기를 원하시지 제물을 받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의 주인이십니다. 이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님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면서 양 천 마리를 가지고 나오든 양 만 마리를 가지고 나오든 그게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헌금 봉투에 물질을 얼마를 넣어서 가지고 오든 그것은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바라고 원하시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나라는 존재,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는 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서 아벨을 아벨의 제물보다 앞에 두고 있고 가인을 그의 제물보다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 자신의 전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의 예물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목축을 했습니다.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 양이 새끼를 낳았습니다. 양이 새끼를 낳을 때 그 첫 새끼를 받는 아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많이 떨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 양이 첫 새끼를 잘 낳도록 하나님이 지키시고 돌봐 주시면 제가 이 받은 첫 새끼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양의 첫 새끼를 떨리는 손으로 받았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이 첫 새끼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