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선지자 (눅 2:36-40)

중국의 진나라가 멸망한 이후 천하의 패권을 두고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다투었습니다. 결국 한나라의 유방이 천하를 통일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방을 도운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장군 한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신 장군은 마지막 항우와의 전투인 해하 전투에서 사면초가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인물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덕분에 천하 통일이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신 장군의 어린 시절은 참으로 불행했습니다. 고아로 자랐습니다.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시장 통에서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밥을 얻어먹고, 불량배들에게 맞지 않으려고 두 다리 사이를 기어 지나가야 했던 굴욕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신 장군에게는 언제나 꿈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청년의 시절에도 품고 있던 꿈이 있었습니다. "지금 비록 이렇게 살지만, 내가 잘 준비되면, 잘 준비된 사람이 되면 나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쓰임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그를 불러주지 않아도 마치 부름받은 사람처럼 매순간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다하며 지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알아봐 주었던 한나라 유방을 만나지 않습니까? 마침내 주인을 만나서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등락이 있습니다. 어려움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오르내림의 상황 속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되면, 그 때가 차면 반드시 쓰임받을 날이 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삽니다. 믿음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도 견고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형통함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고난과 환난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마다 낙심하고 좌절하면 우리는 때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할 때 쓰임받을 수가 없습니다.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참으로 구차하고 힘든 인생을 살았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납니다. 안나 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분을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84세의 노인을 왜 선지자라고 불렀을까요? 이분이 그만큼 힘들었던, 어려웠던 시간들을 오랜 세월 잘 견뎌내었기 때문입니다. 이분의 삶을 통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의 믿음을 함께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아셀 지파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정결 예식을 위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에서 시므온 할아버지를 만납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이었습니다. 이분은 또한 미래에 대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사람이었고, 천국을 소망했으며, 성령 충만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예언했고, 마리아가 그로 인해서 고통받을 것도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분이 바로 안나 할머니였습니다. 성경은 이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참으로 특이한 것은 여기서 안나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지파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여성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도 드문 일이거니와, 이 여성을 소개할 때 그의 아버지 이름과 동시에 지파를 함께 알려 주는 것은 더욱 드문 일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시므온 할아버지를 소개할 때 이분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친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어떤 지파였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나를 소개할 때는 아셀 지파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의도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셀 지파임을 밝히는 누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는 왜, 어떤 목적으로 안나의 지파를 밝히고 있는 것일까요? 아셀이라는 사람은 그 옛날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들을 네 명의 부인에게서 낳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성은 라헬입니다. 그다음은 레아입니다. 레아는 사실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이기는 했지만, 자녀를 가장 많이 낳기는 했지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두 여인이 경쟁을 하게 됩니다. 라헬은 자기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었고, 레아는 자기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아셀은 레아의 몸종 실바가 낳은 아들입니다. 한번 따져 보십시오.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의 몸종이 낳은 아들입니다. 그러니 열두 명의 아들들 중에 아버지 야곱이 이 아들의 이름이나 한 번 따뜻하게 불러주었겠습니까? 사랑의 눈빛으로 이 아들을 한 번이라도 바라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항상 아버지 야곱의 입에는, 그의 눈에는 요셉과 베냐민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들을 사랑하셨지만, 아버지는 이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참으로 슬픈 세월을 보냈던 아셀이라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들을 다 불러모읍니다. 아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축복을 합니다. 물론 아버지 야곱을 통해서 주시는 축복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버지 야곱의 입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시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아셀에게 어떤 말씀이 주어집니까? 창세기 49장 20절을 보십시오.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마 그 현장에서 아버지의 축복을 듣고 있었던 아셀조차도 얼떨떨했을 것입니다. "아버지하고 나하고 애틋한 게 없는데, 아버지가 평소에 나를 이렇게 사랑한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 주실까?" 기름진 것을 먹을 것이라고 했고, 왕의 수라상을 차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은 말이니 가슴에 담아두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셀 지파에게 주셨던 이 놀라운 복이 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의 자손 안나를 통해서 이루어질 줄은 그 당시 아셀은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

2. 금식과 기도로

오늘 말씀 36절과 37절을 다시 한번 봅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대략 줄잡아서 이 여인이 스무 살에 시집을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결혼하고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면 27세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84세가 되었으니 약 57년 정도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섬겼던 사람입니다.

2-1. 섬김의 참된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