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7:18-24
데니스 간젤(Dennis Gansel)이라는 독일의 영화감독이 2008년 「디 벨레(Die Welle)」라는 영화를 발표했습니다. '벨레'는 독일어로 '물결', '파도'라는 뜻입니다. 독일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해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무정부주의와 독재정치를 교육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무정부주의를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과 독재정치를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으로 분반한 뒤, 각각 일주일간 집중수업을 시작합니다.
독재정치 수업을 맡은 라이너(Rainer) 선생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학생들의 무기력한 표정을 읽었습니다. 독일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히틀러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이었는지, 독재가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낳았는지, 나치즘이 끼친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기에, 또다시 독재정치를 학습해야 한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았던 것입니다. 라이너 선생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던 학생들의 책상을 모두 자기를 향하도록 재배치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발언하려면 반드시 교사인 자신에게 허락을 받도록 원칙을 세웠습니다. 또 하나의 규칙을 정했는데, 단합된 힘을 보여주기 위해 구령에 맞추어 발을 힘차게 구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래층 교실에서 무정부주의 수업을 받는 반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결속력을 과시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열광했습니다. 선생은 숙제를 냈습니다. 반 이름을 정하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정한 이름이 바로 '디 벨레(Die Welle)', 물결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하얀색 유니폼까지 갖추었습니다. 서로의 결속력을 다지며 구호도 만들어 외쳤습니다. 원칙은 하나였습니다. '디 벨레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 성별이나 성적이나 외모에 따른 차별은 절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내부의 결속력이 강해질수록 외부를 향한 배타성 역시 비례하여 강해졌습니다. 더 무서운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디 벨레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은 평소에 존재감이 없던 아이들, 학교에 다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늘 차별받고 구박받던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열심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주일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은 호소했습니다. 이대로 하나의 반이 되면 안 되느냐고, 헤어지기 싫다고, 현실로 돌아가기 싫다고 간청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는 시점에 선생은 선언했습니다. "너희들이 일주일간 경험한 이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고, 전체주의다." 아이들은 경악했습니다.
이 영화는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실제로 행해진 사회적 실험의 결과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실험 당시에도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전체주의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평소 소외되었던 학생들이 가장 열렬한 참여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열등감은 독재를 만드는 무서운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습니다.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발전하고 성장하는 동안 독일은 계속 뒤처졌습니다. 열등감이 국민 전체를 짓눌렀습니다. 그때 히틀러(Adolf Hitler)라는 괴물이 등장했습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불을 붙이고 기름을 끼얹어,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곱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은 존재감 없이 살아온 자들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야곱의 사랑에서 소외되어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탄이 그 열등감을 파고들기 시작하자, 그들은 동생 요셉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결국 그를 팔아버렸습니다. 악은 이런 방식으로 활동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악의 실체가 무엇인지,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악을 이겨내야 하는지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땅에 목축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야곱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요셉을 그 먼 세겜 땅으로 보냈습니다. 형들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채색옷을 입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세겜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그의 형제들을 연결시켜 주신 것입니다.
저 멀리서 요셉이 채색옷을 입고 다가오는 모습을 본 형들은 그를 죽일 음모를 꾸몄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 37:18-20)
이 장면을 통해 악이 우리 인생과 주변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째, 악은 혼자서 일하지 않습니다. 악은 항상 동역자를 구합니다.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만약 한 사람만 따로 있으면서 요셉을 만났다면, 아마 누구도 살해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이서 요셉을 만났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죽이겠다는 음모를 꾸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가족을 다 속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열 명의 형제가 한 곳에 모여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로 뭉쳐버리면 단 한 사람만 속이면 됩니다. 아버지 야곱만 속이면 되는 것입니다. 악은 항상 동역자를 찾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혼자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함께 있던 남편 아담에게 주어 그도 먹게 만들었습니다. 뱀과 하와와 아담이 공범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가 다른 사람으로 전이되고, 그렇게 악의 공모가 완성되었습니다. 악은 이런 식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견고한 진을 치고, 악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이자 동역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도 혼자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동역자를 찾으십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동식물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사명을 맡기실 때, 반드시 돕는 자를 붙여주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을, 여호수아에게는 갈렙을, 다윗에게는 요나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세례 요한과 열두 제자를 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일하실 때, 목회자와 장로들과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게끔 하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이 방법을 보고 그대로 모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고리를 만들어 가시고, 그 선한 고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믿음의 동역자가 되도록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 일의 선한 고리에 우리가 참여하여,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서로를 세워주고 격려하는 공동체를 이루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를 모방하여 악의 연결고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어떻게 이 싸움을 헤쳐나가야 합니까? 답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믿음의 백성은 악의 연결고리의 일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과감히 끊어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선한 연결고리는 이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악의 연결고리에 가담하면서 선한 고리를 끊어버리는 사람이 된다면, 이는 사탄의 하수인이지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남유다 말기, 나라가 멸망 직전에 유다는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친애굽파와 친바벨론파로 분열되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붙어야 한다는 주장과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에 조공을 바쳐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있는 한,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있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메시지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레미야는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결탁한 거대한 악의 카르텔 한복판에서, 모두가 괜찮다고 외치는 그 시기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