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꿈을 꾸다

본문: 창세기 37:5-11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산과 들에 꽃이 활짝 피어납니다. 4월이 되면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벚꽃이 만개하고, 많은 사람이 꽃놀이를 즐깁니다. 5월이 되면 벚꽃은 지고 아름다운 장미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합니다. 곳곳에서 장미축제가 열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장미축제가 에버랜드에서 열립니다.

장미는 보기에만 아름다운 꽃이 아닙니다. 향기도 강렬합니다. 향수를 만드는 이들에 따르면 장미는 약 이천 가지 이상의 냄새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조향의 세계는 결국 장미에서 시작해서 장미로 마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샤넬 넘버 5'도 장미향을 베이스로 만든 향수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향기롭고 아름다운 장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야생 들장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량종 장미는 열매가 퇴화되어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꽃이 있으면 당연히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장미에게서 열매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더 아름다운 꽃을, 더 강렬한 향기를 원하여 개량하고 또 개량하는 사이에, 장미는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이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장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고통스럽고 슬픈 일입니다.

만약 그런 장미가 우리의 인생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남들이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정작 인생에 열매가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신앙생활을 40년, 50년, 평생을 했는데 하나님 앞에 내어드릴 열매가 없다면, 그보다 허무하고 안타까운 일이 있겠습니까. 인생의 열매, 믿음의 열매, 신앙생활의 열매는 이토록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야곱의 가정을 보면, 이 가정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엉망입니다. 열매는커녕 가정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깨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가정이 약속의 가정이라는 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내려오는 약속의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고, 소망 없고 희망 없는 가정에 꿈을 주셨습니다. 바로 요셉을 통해서 꿈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게 되었는지, 그 꿈을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 본문이 그 첫 시작을 알려줍니다.

소망 없는 가정에 임한 꿈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이 세상을 떠난 이후, 라헬에게 주었던 사랑을 요셉에게 고스란히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편집증에 가까운 사랑이었고, 집착이며 편애였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했던 그 편애가 눈에 보이게 드러난 것이 바로 채색옷이었습니다. 채색옷은 값비싼 옷이었을 뿐 아니라, 노동을 면제받는 자의 옷이었습니다. 일종의 장자권을 요셉에게 물려주겠다는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은 엉망이 됩니다. 형제들끼리 미워하고, 증오하고, 갈등합니다. 서로 편안하게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샬롬의 평화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편애로 일으킨 문제였습니다. 이 가정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이대로 가면 그냥 끝장나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을 그대로 두실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너를 복이 되게 하겠다. 너의 자손을 저 하늘의 별과 같이, 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해주겠다."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쌓아온 추억, 믿음의 여정이 얼마나 깊었습니까.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 없는 가정에 한 번 더 소망을 주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 37:5)

요셉은 이미 채색옷 때문에 형제들의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꿈까지 꾸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꿈이었기에 형들이 그를 그토록 미워한 것입니까.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6-7)

형제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곡식 단을 향하여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꾼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 꿈을 자기 입 밖으로 형들에게 말해 버린 요셉도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 꿈이 의미하는 바를 형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무척 기분이 나빴고,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꿈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또다시 비슷한 내용의 꿈을 다른 형태로 꾸었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 37:9)

해와 달과 열한 별, 곧 부모와 형제들 모두가 요셉에게 무릎 꿇고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 이야기를 또 해버렸습니다. 형들의 분노는 폭발합니다. 아버지도 이 분위기를 다 읽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험악하여 오히려 요셉을 꾸짖을 정도였습니다.

이 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각기 달랐습니다. 형제들은 분노했고, 요셉은 아무 생각 없이 형들에게 다 말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이 일을 두려워하며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꿈을 마음에 간직해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