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의 선택

본문: 창세기 36:1-8

통일신라는 수백 년간 지속되다가 9세기에 이르러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중앙의 통제가 힘을 잃고 지방의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급기야 900년에 견훤이 후백제를, 901년에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우면서 후삼국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후삼국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라를 통일한 인물은 견훤도 궁예도 아닌 왕건이었습니다. 왕건은 본래 궁예 휘하의 지방 무사 출신이었습니다. 무예가 뛰어나고 식견이 넓으며 인품이 좋아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신망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혼란을 수습하고 나라를 통일할 수 있었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두 번에 걸친 특별하고 탁월한 선택이 그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첫 번째 선택은 궁예의 관심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며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만들던 그때, 하루는 궁예가 왕건을 불러들여 다짜고짜 이렇게 말합니다. "네 마음속에 역심을 품고 있는 것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 자백하면 용서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는다." 인정해야 하는가, 부인해야 하는가. 그때 궁예의 측근이 붓을 떨어뜨리는 척하면서 귓속말로 "아닌 것으로 하라"고 알려줍니다. 왕건은 그 순간 결단을 내렸습니다. 거짓이라 호소한 것입니다. 한 번만 살려달라는 왕건을 궁예는 호쾌하게 웃으며 시험해 본 것이라 하고 살려주었습니다. 반대의 선택을 했더라면 그 자리에서 끌려나가 죄 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선택은 918년 6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측근들이 더는 폭정을 견딜 수 없다며 왕건에게 나라를 세울 것을 간청했고, 그의 부인이 갑옷을 가져와 직접 남편에게 입혀주었습니다. 왕건은 918년 고려를 세웠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으며, 이 나라는 474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고 누군가가 실패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공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올바른 선택이 쌓이고 또 쌓여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선택, 잘못된 선택, 최악의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서 가슴 아픈 결말을 만들어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에서의 두 번에 걸친 잘못된 선택이 나옵니다. 이 선택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죄의 자리로 돌아간 선택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창 36:2)

에서가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는 기록입니다. 당황스러운 사실은 여기 나오는 부인들의 이름과 창세기 앞부분에 기록된 부인들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 26:34-35)

학자들은 이름이 다른 이유를 여러 방면으로 설명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에서가 이방 결혼을 했다는 사실과 여자 관계가 복잡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에서의 복잡한 여자 관계는 부모를 근심하게 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아들 에서를 보면서 항상 걱정하고 염려했습니다.

사실 이 점에서는 야곱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이방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만약 야곱이 라반에게 가지 않고 집 근처에 머물렀다면 부모의 근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헬과 레아, 빌하와 실바, 네 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로 인해 가정에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끊이지 않았으니, 야곱 역시 에서 못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야곱과 에서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에서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렸습니다.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창 36:3)

이스마엘의 딸을 자기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 없는 무서운 범죄행위입니다. 이스마엘이 누구입니까? 자기 아버지 이삭의 배다른 형제가 아닙니까? 아버지 이삭은 약속의 아들인데, 이스마엘 때문에 어린 시절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배다른 형 이스마엘에게 학대를 받았고,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 사이에 심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보내라고 하셨고,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죄의 싹을 잘라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훌륭한 믿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의 싹을 잘라내고 죄의 근원을 끊어냈는데, 에서는 다시 그 죄의 자리로 돌아가는 악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번 끊어낸 악의 근원을 다시 자기 집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민 1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 14:11-12)

이 사건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별로 한 명씩 열두 명의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은 살 곳이 못 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하여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고, 애굽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하게 보셨습니다. 애굽이 어떤 곳입니까?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곳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었고, 그곳 사람들은 우상을 섬겼으며,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악의 도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크나큰 대가를 치르시고 구속하여 건져내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나를 멸시한다.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 그들을 다 광야에서 멸해 버리겠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다시 그 죄악의 불구덩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