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본문: 창세기 35:8-15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은 X선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845년에 태어난 그는 쉰 살이 될 때까지 물리학자로서 48편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학계를 뒤흔들 만큼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성실하고 진실하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오십에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X선을 발견한 것입니다. 당시 의사들에게는 한 가지 오랜 숙원이 있었습니다. 환자의 몸을 고통 없이 들여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의술로는 그것이 불가능했습니다. X선의 발견은 그 불가능을 현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돈방석에 올라앉았다"고. 영국은 당시 유럽 최고의 강국이었습니다. 일찍이 산업혁명에 성공하였고, 1623년부터 특허법이 시행되어 특별한 발명을 한 사람들이 영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기술과 자본이 만나면 독점자본이 형성되는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뢴트겐에게 영국으로 가서 큰 돈을 벌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독일에 머물렀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내가 X선을 발명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부터 자연에 있던 것을 우연히 발견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자산입니다." 만약 그가 영국으로 건너가 특허를 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오늘날 엑스레이 한 장을 찍으려 해도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힘을 빼고, 자기 자신을 올바로 직시하며, 겸손하고 진실되게 살았기에 온 인류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이름은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이름은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먼저 힘을 빼야 합니다. 온몸에 들어간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전능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시느냐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일하십니다. 몸에서 힘을 빼고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름 없는 자의 영광

야곱과 그의 가족은 세겜을 떠났습니다. 이방 신상과 귀고리들을 모두 땅에 묻고 길을 나섰습니다.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첫사랑의 장소였습니다.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두려움에 떨며 도망하던 그때, 만나주셨던 하나님을 벧엘에서 다시 만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지점에서 한 의미 있는 사람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창 35: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의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의 유모가 죽었다면, 야곱에게 이 여인은 거의 할머니뻘이 됩니다. 이 여인이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리브가의 유모가 어떻게 야곱의 가족과 함께 동행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더 놀랍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첫 등장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창 24:58-59)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리브가를 찾았고, 리브가가 함께 가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때 친정에서는 리브가를 혼자 보내지 않고, 그를 기르고 키웠던 유모를 함께 보냈습니다. 이 유모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함께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유모는 언제 다시 야곱과 함께 밧단아람으로 가게 되었을까요?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창 27:44-45)

야곱의 가정에서 장자권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아들 야곱을 자기 친정 밧단아람으로 떠나보냅니다. 떠나보내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네가 거기 가 있으면 내가 사람을 보내겠다." 아들의 안부를 전해 듣고 이곳 상황도 알려줄 사람을 보내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형편이 여의치 않아 아들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안부가 너무도 궁금했던 리브가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평생 함께했던 유모 드보라를 그곳에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드보라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직접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보낸 이십 년 사이에 리브가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유모 드보라는 돌아가도 섬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야곱과 함께 그곳에 살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의 유모였던 드보라를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모셨던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이제 벧엘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이 세상을 떠날 때, 성경에 그 이름을 기록해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이 여인의 이름이 밝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길을 떠날 때는 '리브가와 그의 유모'라고만 했습니다. 리브가가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도 '드보라를 보내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이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는 순간은 바로 세상을 떠날 때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라고. 그리고 이 여인이 묻힌 곳은 벧엘, 곧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이 여인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성경에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을 반추해 봅니다. 처음에는 어느 한 집안의 여종으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리브가의 유모로 살다가, 리브가가 시집갈 때 먼 가나안 땅까지 따라갔습니다. 믿음 좋은 집안에 며느리로 가는 리브가를 따라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여인이 낳은 아들을 위해 밧단아람까지 건너가 평생을 섬기며, 믿음이 자라고 성장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고,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확신을 하나님이 각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 벧엘에 묻어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평생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 한 집안의 그림자로 살았습니다. 그저 일만 하고, 의리 있게 이곳저곳 다니며 섬기며 살았습니다. 큰돈을 만져본 적도 없고, 자기 이름이 드러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여인의 이름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 이 여인의 이름을 기록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