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본문: 창세기 35:1-7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발견이나 발명을 하게 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주로 과학 분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그 전형적인 사례가 영국의 미생물학자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입니다. 플레밍은 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하여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병사들이 팔다리에 상처를 입고 후송되어 왔지만, 변변한 소독제가 없어 상처가 썩어 들어가고 결국 팔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생명까지 잃었습니다.

플레밍은 전쟁이 끝난 후 소독제를 개발하겠다는 뜻을 품고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상처를 썩게 만드는 원인이었던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며 관찰하던 어느 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는데 포도상구균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푸른곰팡이가 우연히 배양액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푸른곰팡이를 연구하고 배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페니실린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항생제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공로로 그는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업적을 평가절하합니다. 얻어걸린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뜻을 가지고 일했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며 발버둥 쳤기 때문에 이 위대한 발견이 가능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일하는 사람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움직이고 일하면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그 방향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길 위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과 그의 가족이 움직이고 일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걸어가서 아름다운 열매를 경험한 사건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일하시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의 형통

야곱과 그의 가족은 세겜에서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했고, 앞날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야곱은 가족을 모아 놓고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방 신상들을 내어놓았고, 귀고리를 빼었습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 35:5)

그들은 걱정했습니다. 세겜 사람들과 동맹을 맺었던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이 어디에 매복했다가 뛰쳐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추격하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면 고을들로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추격하는 자가 없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소망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야곱은 세겜 땅에서 밭을 일구고, 집을 지었습니다. 이미 가진 부가 적지 않았는데도 더 많은 재물을 축적하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그런데 그 물질이 그를 구원했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 세겜 땅에 머물렀다가 디나 사건으로 심각한 위기가 벌어졌고, 급기야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물질이 그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야곱과 하나님 사이에 물질이 놓여 있었고, 그 물질이 야곱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우상을 끼고 살았습니다. 라헬은 드라빔을 섬기고 있었고, 다른 가족도 저마다 우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우상이 그들을 구했습니까? 결국 그것들을 모두 모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어버렸습니다. 귀고리도 묻고, 신상도 묻었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순전하고 깨끗해졌습니다. 이제는 물질도 바라보지 않고, 신상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는데 하나님이 일하시겠습니까? 혼합주의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만 섬길 때, 그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억해야 합니다.

남유다의 왕들 중에 악한 왕도 있고 선한 왕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히스기야입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왕하 18:4-5)

히스기야가 네 가지를 깨뜨렸습니다. 산당, 주상, 아세라 목상, 모세가 만든 놋뱀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상이고, 또 하나는 전통입니다.

왕으로서 우상을 깨뜨리는 일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상은 부어 만든 우상을 통칭하는 말이고, 아세라 목상은 나무로 여신의 형상을 새긴 것입니다. 길거리마다, 동네 곳곳마다 이런 우상이 있었는데, 왕의 명령으로 쓸어버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전통을 제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산당은 당시 성전의 부속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성전에는 제사장이 있고 격식을 갖춘 예배가 있었지만, 산당에는 제사장이 없었기에 자유로운 예배가 이루어졌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것처럼 초기에는 좋은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산당이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장이 없으니 욕망대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방의 제사까지 산당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런 산당을 없애버렸습니다. 산당은 사유재산이었습니다. 5대째 대물림되어 온 산당을 왕이라고 해서 함부로 철거할 수 있겠습니까? 유다 온 나라에 있는 산당을 문닫게 하면 백성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히스기야는 왕의 자리를 걸고 이 일을 감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강력한 도전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만든 놋뱀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광야에 불뱀을 풀어놓으셨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높이 매달라고 하셨고, 그것을 바라본 자마다 살아났습니다. 그때부터 이 놋뱀은 신성시되어 대대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출애굽 당시가 대략 기원전 14세기이고 히스기야가 왕이 된 때가 기원전 7세기경이니, 약 700여 년 동안 모세가 만든 놋뱀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이 이 놋뱀에 신통력이 있다고 여기며 엎드려 분향하고 절하는 일이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