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5:2-5
미국이 전 세계 패권 국가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달러화는 기축 통화이며, 미국은 전 세계 분쟁 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부분일 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미국의 진정한 강함이 드러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통하는 문화입니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 문화가 아니라, 어떤 말이든 어떤 주장이든 자유롭게 나누고 대화할 수 있는 근본적 토대가 그들이 지닌 강력한 힘입니다.
한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이 중동 주재 미국 외교관들을 만난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반대 채널'의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중동 주재 외교관들은 국무장관에게 두 가지를 건의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 미국이 휴전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것이 첫째였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폭격하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는 것이 둘째였습니다. 이 두 가지를 주장하며 반대 문서에 서명하고, 공적 문서에 자기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상의 불이익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1971년 닉슨 행정부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의 교착 상태에서 다양한 출구 전략을 모색하던 닉슨 행정부는 반대 채널을 가동하여 반대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내건 조건이 두 가지였습니다. 인사상의 불이익이 없다는 것, 그리고 건설적인 반대에는 상을 수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관료 조직 안에서는 반대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면 들어주고, 수용하며, 반대할 것은 반대하는 이 문화가 오늘의 미국을 강하게 만든 힘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있지만, 그것을 얼마나 진심으로 수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누군가 나를 반대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라는 인격에 대한 반대로 여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반대를 진심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믿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 앞에서 제대로 반응하며 살아낼 때 비로소 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모른 척하고 귀를 닫으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이 그러한 인물입니다. 야곱은 적지 않은 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듣고 반응하며, 즉각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야곱과 그의 가족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을 야곱의 자녀들이 몰살시켰고, 그들의 재물을 사로잡아 왔으며 노략까지 해 버렸습니다. 이제 세겜과 동맹을 맺은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에 빠져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위기 상황마다 야곱을 찾아오신 것, 그 자체가 이미 은혜였습니다. 야곱은 그 놀랍고 귀한 은혜를 거듭 덧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야곱과 그 가족의 몫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할 것인가. 본문 2절의 말씀입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 35:2)
'이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즉각적 반응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 가족에게 말씀하신 것에 야곱이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가족들과 함께한 모든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자'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탁월한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적극적으로 모색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사회성이 결여되었거나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는데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영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 반응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인생이 달라지고 삶이 놀랍게 변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베드로가 대표적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4-5)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처음 만나신 자리에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베드로가 적극적으로 반응합니다. 만약 베드로가 '나는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인데, 당신이 무엇을 안다고 말씀하십니까'라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말씀을 내쳐 버렸더라면, 그의 인생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반응하고,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고, 열두 제자 가운데 수제자가 되었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탁월한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주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말씀에 대한 반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1)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죄가 우리를 유혹할 때 죽은 자처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반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죽은 자가 반응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누가 죽은 자를 향하여 발길질을 해도,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해도, 죽은 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가 이처럼 반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