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5:1
두더지의 결혼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두더지가 딸을 하나 낳았는데, 자기가 보기에 그 딸은 천하일색 절세가인이었습니다. 금지옥엽 잘 키워 마침내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흉측하게 생긴 이웃집 두더지 총각에게 시집보낸다는 생각만 해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가장 어울리는 멋진 신랑을 찾아주기로 결심하고, 온 세상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떠 있었습니다.
해님이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 가장 위대한 존재라 생각하고 찾아가 딸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해가 말합니다. 자기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름이 자기를 가리면 꼼짝도 못 하니 구름에게 가보라고 했습니다. 구름을 찾아가자 구름도 고백합니다. 바람이 불면 도망가기 바쁘니, 바람이 훨씬 강하다고 했습니다. 바람을 찾아가니 바람 역시 담벼락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게 불어도 담벼락은 꿈쩍도 하지 않으니 담벼락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담벼락에게 갔더니 담벼락이 말합니다. 요즘 두더지들 때문에 죽을 것 같다, 매일 땅을 파서 곧 무너지게 생겼으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두더지라는 것입니다. 결국 두더지 어미는 딸을 이웃집 총각 두더지에게 시집보냈고,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 딸이 해와 결혼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사실이되, 평생 바라만 보다가 외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구름과 결혼했다면 잔뜩 찌푸린 얼굴 앞에서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불행하게 살았을 것이며, 바람과 결혼했다면 찬바람 속에서 늘 외롭고 눈물 나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담벼락과 결혼했다면 든든하기는 하나 평생 벙어리에 냉가슴 앓으며 답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두더지는 두더지와 결혼해야 가장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 믿음의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야곱의 이야기로 말하면 벧엘에서의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고, 주의 일에 힘쓰며, 맡겨주신 재능으로 열심히 섬기고 일할 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세겜에서의 삶이 화려해 보입니다. 그러나 세겜에 내려가면, 마치 두더지가 해와 바람과 구름과 담벼락과 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그리고 그 은혜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야곱은 안팎으로 큰 위기 가운데 처해 있습니다. 그가 직면한 내적 위기는 가정의 위기입니다. 가정에서 그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얍복 강에서 사랑하는 자녀를 세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부터 그는 아버지로서의 지도력을 상실했습니다. 레아의 아들들이 아버지를 협상 테이블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야곱은 이미 내적으로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외적으로도 위기는 심각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칼로 도륙했습니다. 할례 언약을 미끼로 통혼하기로 하고는 세겜의 남자들을 살해하고 전리품과 부녀자들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겜과 동맹을 맺었던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보복하러 올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서 야곱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 35:1)
이 말씀에는 놀라운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야곱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한 야곱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야곱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잠잠히 있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벧엘로 올라갔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세겜에 정착한 결과 이 모든 일이 벌어졌으니 그 책임이 고스란히 자기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야곱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먼저 찾아오신 것이 세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벧엘에서였습니다.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은 채 도망갈 때,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사닥다리 환상을 보여주시며, 그 사닥다리 끝 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셨습니다. 두 번째는 얍복 강가에서였습니다. 에서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씨름을 걸어오셨고,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세 번째입니다. 두려움에 떨며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성경에는 야곱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행 9:3-5)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옥에 넘기려고 가던 사울을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 만나주셨습니다. 사울이 예수님 앞에 나아가 만나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이 없는데도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 주신 것, 이것은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기다리며 찾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야곱에게도, 사울에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임했고,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야곱에게도 사울에게도 제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셨는데, 왜 나에게는 먼저 찾아오시지 않느냐고 의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찬찬히 반추해 보면,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적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살펴보면 매 순간이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은혜의 순간들입니다.
오래전에 한 나이 드신 집사님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6남매를 남겨놓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6남매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가진 돈도, 배운 기술도, 학벌도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장사뿐이었습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을 고무 다라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골목골목을 다니며 생선을 팔았습니다. 허리는 끊어져 나갈 것 같고, 목은 풀어질 것 같고, 어깨는 빠질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