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위하여

본문: 창세기 33:12-20

진화생물학자이자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본능적으로 자기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이며,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설계된 기계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기 유전자를 후대에 오래도록 남길 수 있겠습니까? 도킨스는 그 방법으로 인간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는 것과 인간이 자기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상관이 있습니다.

악당이 되면 일찍 죽을 확률이 훨씬 높지 않습니까? 세상을 악하게 살아서 사람들과 원수를 지면, 오래 생존할 확률보다 일찍 사망할 확률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도킨스는 사람이 평범하게 살고 선하게 살면 자기 유전자를 후대에 오래도록 남길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착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렇게 기계적으로, 본능적으로, 자기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진화론의 극단을 보여주는 논리입니다.

사실 그의 주장으로는 하나님을 만난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것을 취하지 않고 타인에게 모든 것을 양보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초개같이 버립니다. 이것은 도킨스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굳이 도킨스의 이야기를 들지 않아도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살고, 타인을 압제하며,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고 돌아갑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맘그렌이라는 사람은 2009년 영국의 경제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가지표를 봐도 환율을 봐도 전부 평범했습니다. 살림살이가 힘들어졌다고 볼 만한 경제지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비롯한 영국 시민들과 유럽 사람들은 먹고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표는 정상인데 실물경제는 왜 이렇게 나쁘게 느껴지는 것일까? 살펴보았더니, 서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식료품의 가격은 그대로인데 부피와 양이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줄어들다는 뜻의 '슈링크'와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합친 경제학 용어입니다. 부피는 줄이고 양도 줄이되 가격은 그대로 두어, 체감적으로 물가상승의 효과를 유발한다는 개념입니다.

굳이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과거에는 가게에 가서 과자 한 봉지를 사면 제법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서 열어 보면 질소가스만 가득 차 있고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햄버거도 가격은 예전과 똑같은데 내용물은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도 슈링크플레이션의 시대 한가운데를 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돈은 벌어야겠고, 이전처럼 풍성하게 넣지는 못하겠고, 모두가 이기적으로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곱의 이기심이 등장합니다. 야곱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뜨겁게 하나님을 만났다가도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다가도 다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야곱에게 실망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이기심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봅니다. 야곱은 왜 이런 것입니까? 야곱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보고, 내 속에 있는 이기심을 발견하여, 어떻게 하면 이것을 고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거짓된 입술, 반복되는 자기기만

야곱과 에서가 20년 만에 만났습니다. 다리를 절뚝이고 온몸이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나타난 야곱을 보고 에서가 달려와서 끌어안습니다. 20년의 해묵은 감정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순간입니다. 야곱도 에서에게 고백합니다.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화해했습니다. 이제 에서가 야곱과 함께하기를 청합니다. 못다 한 세월들을 함께하고 싶다며, 세일산으로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형 에서의 말에 야곱은 선뜻 반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함께 가기가 싫었습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창 33:13-14)

결과적으로 야곱의 이 말은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해 놓고 세일로 가지 않았습니다. 형만 먼저 보내고 자기는 뒤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세일로 먼저 가 계시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가지 않은 것입니다. 야곱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이렇게 살았습니다. 자기 목적이 정해지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도 감행합니다. 장자권을 얻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오면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그런데 뒷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감행합니다. 라반을 속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반도주해 버렸습니다. 혼자 도망간 것이 아니라 처자식들과 짐승들을 다 이끌고 도망갔으니 어떻게 발각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방 뒤따라 잡힙니다. 그런데도 그는 라반을 떠나겠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런 거짓말도 감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와 함께하기 싫으니까 "먼저 가 계시면 뒤따라가겠습니다" 하고는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합니다.

이 거짓말이 훗날 야곱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됩니까? 지금까지 야곱은 거짓말의 대가를 지불하며 살아왔습니다. 거짓말은 그 순간 면책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무게로 어깨 위에 올라옵니다. 더 힘든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거짓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사 26:7)

정직하신 하나님께서 정직한 의인이 가는 그 길, 그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입니다. 정직하신 분이 주신 이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1.1도 변함없고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선지자들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했고, 그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니, 기록된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정직하시니,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직하신 하나님이 하신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정직하시니,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도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가 가는 그 길을 평탄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인생은 지금 당장은 평탄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고 가야 합니다. 야곱의 고생스러운 일생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역사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파기된 언약, 사명 없는 안주

그렇다면 야곱은 도대체 왜 거짓말한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