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부산지방법원에 가정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인 천종호 판사는 1965년생으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한 가지 의미 있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청소년 재판, 즉 소년범 재판을 가장 많이 한 판사라는 기록입니다. 8년 동안 약 만 2천여 회의 재판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 소년범 재판에 허용되는 시간이 한 사람당 3분을 넘지 않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법정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깨닫게 할 수 있을까 몹시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냥 지나가버리면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고 흘려버려서, 또다시 재범, 삼범하여 그 자리에 다시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섭게 꾸짖어서 다시는 이런 자리에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이 '호통 판사'입니다. 호통을 치고 큰 소리로 꾸짖어서 다시는 그 자리에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 언론 인터뷰와 책을 통해서 비행 청소년들의 상황을 밝혀내셨습니다. 여러 비행 청소년들의 불우한 환경, 그리고 돌봐줄 부모가 없는 환경이 그들을 범죄로 내몰았고, 결국 법정에 서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비를 털어서 청소년 공동 주거지를 마련하셨습니다. 첫 번째 초범에서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청소년들 중에 공동 주거를 희망하는 아이들을 그곳에서 돌보고 양육하는 일을 앞장서서 하고 계십니다. 차가운 인간의 법정, 그 이면에 따뜻한 인간미가 함께 감춰져 있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사람의 법정에도, 아주 차가운 법정에도 이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흐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정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지난주부터 그리고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죄 지은 자들을 심판하신 내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그 이면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하심이 함께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놀랍고 크신 은총의 혜택을 입고 살아가는 자인데, 그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여자를 심판하십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두 가지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우선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더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총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 짓기 전 임신과 출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이요 은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죄를 지었고, 죄 짓고 난 이후에는 거기에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여기 '고통'이라고 쓰여진 단어는 히브리어 '이차본(עִצָּבוֹן)'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고통을 겪다'라는 뜻이 있고, 두 번째 뜻으로는 '모양을 만들다', '모양을 형성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이 출산할 때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어야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고통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고통이 왜 죄 지은 당사자 하와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앞으로 올 모든 인류에게, 오늘 우리에게까지 자녀를 낳을 때 생명을 담보하는 그 엄청난 고통을 허락하셔야만 했을까요?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는 결론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 지을 때는 잘 모릅니다. 죄는 은밀하고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의 유혹을 받았을 때, 뱀이 그들에게 다가와서 유혹했을 때, 그들은 얼마나 달콤했겠습니까? 저걸 따먹기만 하면 내가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그 기대와 열망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죄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유혹을 안겨줍니다. 죄 지을 때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는 비참하고, 결국은 우리 인생을 고통 가운데 몰아넣는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를 생각해 보십시오. 밧세바와 다윗이 하나님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남편 우리아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둘이 음란의 죄악을 즐길 때 그들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죽었습니다. 다윗의 집에 칼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그 이후에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는 결국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조상 하와가 지은 그 죄의 결과가 오늘 우리의 몸에도 아로새겨져서, 결국 죄의 결과는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는 고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깨닫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의 은밀함과 죄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순간의 달콤함이 영원한 고통으로 우리에게 새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두 번째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16절 말씀 하반절입니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원하다', '다스리다'라는 말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원하다'라는 말은 여자가 남편을 주장하기를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기 뜻대로 남편을 주장하기를 갈망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고자 원한다는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기를 원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기를 원한다면, 이 둘의 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지은 여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가정의 주도권 싸움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주도권 싸움은 지금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현장에도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백성들은 결혼 이후에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갈등하고 또 갈등하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