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32:1-20
고려 말기, 공민왕은 소위 개혁 군주로 불리는 인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원나라의 수탈과 압제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공민왕은 어떻게든 나라를 새롭게 하고 회복시키며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개혁 군주 아래에는 자연스럽게 개혁의 뜻을 품은 신하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개혁의 마인드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철학을 공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급진적 개혁파도 있었고, 온건한 개혁파도 있었습니다.
급진적 개혁파는 고려라는 간판을 아예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려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났으므로 처음부터 새롭게 갈아엎고 새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급진적 개혁파의 중심인물이 바로 정도전이었습니다. 반면 온건한 개혁파도 있었습니다. 하나부터 차근차근 고쳐가면 나라가 새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고, 고려라는 간판을 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 대표주자가 정몽주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정도전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려를 그대로 두고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파트너를 찾았는데, 그 인물이 바로 이성계였습니다. 당시 이성계는 왜구를 소탕하고 오랑캐를 물리치며 백성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성계와 정도전은 손을 잡고 역성혁명을 이루어내어 조선을 건국합니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통해, 정도전은 이성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정도전에게 나라의 설계를 맡겼습니다. 정도전은 경국대전의 기초가 되는 조선경국전을 저술했습니다. 법을 만들고, 한양을 건설하며, 경복궁과 사직단과 종묘와 사대문을 세워 조선의 기틀을 놓았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도전이 만든 틀 위에 이성계가 올라앉은 것입니다. 만약 정도전이 없었다면 이성계는 태조 이성계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 이성계를 태조 이성계로 만든 사람이 바로 정도전이라는 인물입니다.
한 나라가 세워질 때 그 나라를 설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설계대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설계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도 위대하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빚어가시고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꿈과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면,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계획을 붙잡으면 됩니다. 거기에 올라타고 믿음의 길을 달려가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영광의 날을 꿈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 이미 준비하신 것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 준비하신 선물, 야곱은 그것을 붙잡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 선물을 붙잡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계획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의 이십 년 세월을 청산합니다. 돌아보면 고난이었고 힘든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은혜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해 보지 않게 하셨고, 그를 부자 되게 만들어주셨으며,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이십 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이제 라반과 헤어집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라반이 동등하게 조약을 맺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라반이 야곱을 해칠 수도, 괴롭힐 수도 없습니다.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야곱은 라반을 뒤로하고, 그 치욕의 이십 년을 뒤로하고, 벧엘을 향하여 고향 땅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 야곱을 만나게 하십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창 32:1)
이 짧은 말씀은 논리적으로, 구조적으로, 문법적으로 조금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자연스럽게 쓰려면 "야곱이 길을 가는데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지라"라고 해야 훨씬 매끄럽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이렇게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지라"라고 했다면, 그것은 우연한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자기들의 일을 하고 있었고, 야곱은 길을 가고 있었으며, 야곱이 길을 가다가 그들을 우연히 마주친 것이 됩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면 그만인 만남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주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목적을 가지고 야곱을 찾아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며,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그들을 야곱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사자들을 야곱은 어떻게 영접했습니까?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2)
야곱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 천군천사들이 하나님의 군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이 서 있는 그 땅을 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은 '하나님의 군사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군천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그곳을 마하나임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야곱에게 천군천사들을,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셨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며 언약의 성취입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밧단아람을 떠나 벧엘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돌아가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지금 지키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최근의 약속만이 아닙니다. 이십 년 전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길을 떠날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 2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