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 하나님

본문: 창세기 31:1-13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책을 보면 법이 왜 필요한지, 왜 법이 우리에게 필수적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한 여인이 살았는데, 이 여인은 젊은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남편이 갑자기 집에 일찍 들어왔습니다. 남편이 골목어귀를 지나 자기 집 앞에 섰는데, 갑자기 집 문이 열리며 안에서 젊은 남자 하나가 뛰어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남편이 그 젊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보아하니 우리 집에 오신 손님 같은데 용건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이 젊은 남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뒤따라 나오던 아내가 남편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 "당신, 여기 도대체 누가 있다고?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누구를 보고 손님을 운운하는 것이냐? 혹시 당신이 미친 것 아니냐?" 기가 막히고 황당한 상황이 이어져서 남자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지금 이 젊은 남자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도 이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남편이 묻습니다. "지금 누가 미친 겁니까? 이 젊은 남자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도 "도대체 젊은 남자가 어디에 있느냐, 당신은 미친 것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집에 들어가 물을 한 바가지 퍼다가 남편에게 끼얹어 버렸습니다. 귀신에 씌이면 물을 부어야 귀신이 떠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토록 극단적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이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한비자가 기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말의 힘 때문입니다. 옛말에 '세 사람이 모이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면 처음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 '정말 그런가' 흔들리게 되고, 세 번째 사람이 또 같은 거짓말을 하면 '진짜인가 보다' 하고 믿어 버립니다. 말의 힘이라는 것이 이토록 한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 정도로 강력합니다. 다른 하나는 세력입니다. 아마 이 여인은 그 마을에서 무시 못 할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힘이 있었기에, 세력이 있었기에 누구도 이 여인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구조 아닙니까? 아니라고 말했다가 돌아올 불이익이 뻔한데 어떻게 반박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한비자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이 황당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야곱이 바로 그런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 야곱을 괴롭힙니다. 없는 말을 지어냅니다. 그리고 그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에게는 자신을 지켜 줄 울타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돌봐주셔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라반 같은 사람들, 우리 주변에 악에 빠진 사람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어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초자연적 역사 이면의 하나님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창 31:1)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야곱이 20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종처럼 일했습니다. 이제 외삼촌 라반을 떠나겠다고 결정하고 라반에게 가서 두 사람 사이에 품삯을 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품삯을 정했습니다. 얼룩이 있는 짐승들은 자기 것으로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라반이 얼룩이 있는 짐승을 모조리 모아 자기 아들들에게 맡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거리를 두게 했습니다. 서로 섞이지 않게 하려고, 야곱에게는 얼룩무늬 짐승을 한 마리도 주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야곱이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다 가지고 다녔는데, 야곱의 양들이 새끼를 낳기만 하면 얼룩무늬 짐승, 점이 있는 짐승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것을 훔친 적도 없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라반의 아들들이 이런 식으로 야곱을 모함하고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아들들이 이렇게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계약의 당사자인 라반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핵심 문제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 31:2)

라반의 안색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라반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가 그 자리에서 겪었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럽겠습니까? 없는 사실을 지어내고 동네 사람들에게 이상한 헛소문을 내고, 나는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나를 도둑 취급하고,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거꾸로 생각해 보면,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대단히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들이 어리석은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이면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평생 동안 이런 일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었겠습니까? 얼룩무늬 짐승들만 태어나는 이 놀라운 현상, 자연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런 일을 라반이나 그의 아들들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면에 도대체 어떤 힘이 역사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야곱이 하는 것마다 잘되고, 야곱이 손대는 것마다 열매를 맺는데, 도대체 야곱에게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인지, 그 이면에 역사하시는 힘의 원천과 비결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것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그것을 찾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보기 싫고, 생각하기 싫으면 자기 생각대로 그냥 묻어 버립니다. 거짓말을 해 버립니다. "우리 아버지의 것을 훔쳐가서 부자가 되었다"고 없는 말을 지어내 버립니다. 보통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장사를 하는데 옆집 식당이 유독 번창하면 거기 가서 먹어 보지 않습니까? 나도 똑같은 업종에서 장사를 하는데, 우리 집은 그럭저럭 먹고사는 수준인 반면 저 집은 유난히 잘되어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그러면 거기 가서 먹어 봅니다. 도대체 비법이 무엇인지, 이 집에서는 어떤 재료를 쓰는지, 손님을 대하는 노하우와 철학은 어떤 것인지 가서 면밀하게 살펴봅니다. 깨달은 것이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적용해 봅니다. 그것이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면 사람들은 그 교회에 와서 배웁니다. 탐방을 옵니다. 그 교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손길을 직접 경험해 보려고 와서 예배도 드려 봅니다. 기업이 잘되면 견학을 갑니다. 나라가 선진국이면 비싼 돈을 들여서 그 나라에 가서 유학을 하고 공부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비결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고, 나도 그렇게 성장하고 잘해 보고 싶으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 이면에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역사를 경험하고 보고 싶은 것이 상식입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공부입니다.

그런데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살펴보았더라면, 그 하나님께 기도하면 될 일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믿음생활을 성실하게 감당하면 자기의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창 41:38-39)

바로는 애굽의 왕입니다. 꿈을 꾸었는데 애굽의 점술가들과 박사들 가운데 해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답답해하고 있던 차에 옥에서 온 요셉이라는 사람이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해몽이 놀랍도록 명쾌했습니다. 살펴보니 요셉은 히브리 사람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요셉 이면에 계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인정한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시는 분은 요셉 뒤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바로는 고백했습니다.

바로는 참으로 지혜로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애굽의 왕이었지만, 요셉 뒤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정권을 위임하고, 7년 대풍년과 7년 흉년을 극복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