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와 르우벤

본문: 창세기 30:14-21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를 정복하고 싶었으나 출혈이 너무 클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계략을 꾸몄습니다. 당시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바둑의 고수인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냈습니다. 도림은 백제 저잣거리에서 내기 바둑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그 소문이 개로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왕이 도림을 불러 바둑을 두어 보니 과연 탁월한 고수였습니다. 몇 번 바둑을 두면서 두 사람은 바둑 친구가 되었습니다.

도림은 바둑만 잘 두는 것이 아니라 입담도 뛰어났습니다. 바둑을 두면서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 백제가 삼국 중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왕실의 모습이 이게 무엇입니까? 궁궐을 새로 짓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성들에게 토목공사를 시켜서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로도 넓히고 제방도 쌓으십시오." 처음에 개로왕은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바둑 친구가 자꾸 말하니 결국 그 말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궁궐도 새로 짓고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국고가 그쪽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고, 국력이 그렇게 쏠려 갔습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장수왕이 쳐들어왔습니다.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개로왕은 남쪽으로 천도해야 했습니다. 결국 백제는 지금의 공주로 수도를 옮길 수밖에 없었고, 고구려는 한강을 차지한 것에 더해 충주까지 밀고 내려왔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야 하는데,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도 좌우될 수 있습니다. 지리학자들은 환경을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으로 구분합니다. 자연환경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이고, 인문환경은 사람의 손이 탄 환경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환경이 있으니, 바로 인적환경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있는가, 나는 자라면서 혹은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와 소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처받는 아이들

어린아이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서 양육을 받아야 하고, 학생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삐뚤어진 심성을 고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는 야곱과 레아와 라헬이 벌이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나옵니다. 이 세 사람의 대립으로 인해 결국 그 가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자녀들입니다.

야곱은 순식간에 아내가 네 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레아를 통해서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이를 지켜보다가 화가 나고 분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서 단과 납달리를 낳습니다. 하나님 앞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던 레아도 이 지점에서 평정심이 무너졌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결국 그들의 진흙탕 싸움에 함께 동참합니다. 레아도 자신의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주고, 이 여인을 통해서 갓과 아셀 두 아들을 낳습니다. 순식간에 야곱은 아내가 네 명이 되었고 아들이 여덟 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복잡한 가정 상황 가운데에서 야곱도 불행하고, 네 여인 중에 행복한 여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은 자녀들입니다. 여덟 명의 자녀들 가운데 누가 가장 불행했겠습니까? 빌하를 통해서 태어난 단과 납달리, 실바를 통해서 태어난 갓과 아셀, 이들은 아직까지 천지 분간도 못하는 어린 아기들입니다. 이제 막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레아가 낳은 네 명의 아이들은 다릅니다. 알 만큼 알고 성장했습니다.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들었고 장년기에 접어들어 갑니다. 이들은 가정에 돌아가는 상황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이들 중에 가장 큰 아들 르우벤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가고, 마음속 깊이 큰 갈등이 자리 잡아 갑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4)

르우벤은 나가서 일할 정도로 성장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래로 동생을 일곱 명이나 거느리고 있고, 이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어른의 몫을 감당할 만한 청장년이 되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 당황스러운 것은 이 아이 르우벤이 들에 나가서 합환채를 구해서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합환채가 어떤 식물입니까?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 임신 촉진제로 널리 알려진 식물입니다. 열매는 단맛이 나고 약간의 마취 성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임신 촉진제로 널리 알려진 식물입니다. 이 아이 르우벤이 합환채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가 기뻐하실 것이다,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하고 이것을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효자입니까? 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하기 때문에 그 효성이 남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들의 눈에 어머니가 얼마나 가엾게 보였으면, 내가 이 합환채를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드리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눈빛 하나 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형제 네 명을 낳고 출산이 멈추었습니다. 아버지의 눈빛은 느끼기에도 차갑습니다. 한 번도 어머니 레아를 향해서 사랑을 표현해 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갈망합니다.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그 남편의 손길 한 번을 그리워합니다.

작은 어머니 라헬을 보면 기세가 등등합니다. 르우벤이 볼 때 밉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의 모든 권한은 라헬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라헬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고, 라헬이 어머니를 구박하고 천대하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라헬의 몸종 빌하까지 어머니를 무시하고 천대합니다. 아들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자라고 있고, 아들의 마음속에는 상처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 작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 빌하를 적대하는 마음, 그 마음이 마음속에 깊이 자라고 있고, 그것은 청소년기 르우벤에게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는 고통 가운데 자라게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합환채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가 좋아하시겠지,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가지고 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하고 자란 르우벤이라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아이라면, 사춘기 나이에 넘쳐나는 힘을 발산하다가 사고도 치고, 이리 들이받고 저리 들이받고 좌충우돌 하면서 부모의 걱정과 근심이 되어야 정상적인 나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부모를 걱정하고 가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만든 환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은 자녀의 성장 발달 단계에 따라서 달라져야 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은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그들에게 억만금 용돈이 뭐가 필요합니까? 그들에게 넓은 집, 좋은 집이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최고의 가치는 아닙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전인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열심히 뛰어놀고 적당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인간관계와 교우관계를 갖출 수 있도록 아이들을 양육하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돌봐주고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수학 공부를 시키고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한다면 그 아이가 행복하겠습니까? 아이의 발달 단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대도시 학원가에 가면 빠지지 않고 존재하는 반이 있는데, 초등학생 의대 입시반입니다. 대도시마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가면 네 살부터 '닥수'라는 반이 있습니다. '닥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닥치고 수학'입니다. 네 살부터 수학을 가르쳐서 영재교육을 시켜야 떨어지지 않고 뒤쳐지지 않고 고3까지 쭉 올라가서 수학을 열심히 해서 의대에 진학할 수 있다고, 지금 대한민국은 의대 광풍입니다.

네 살짜리가 학원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푸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그 아이가 행복하겠습니까? 초등학교 아이가 의대 입시반에 들어가서 하루 10시간씩 공부하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그 아이가 어떻게 행복합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바로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기성세대 어른들이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의 지금의 능력과 자질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를 지금의 기성세대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자녀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제 갓 결혼한 30대 젊은이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자녀를 낳기가 싫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지금 계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른들이 만든 문제인데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야곱과 레아와 라헬이 만든 이 지옥 같은 상황이 르우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서, 르우벤은 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들에 나가서 일할 때도 합환채밖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가 행복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 어머니가 무시당하지 않고 멸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는 르우벤이 정상이 아니고, 이런 가정을 만든 어른들이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