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23-28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팔기 위해 시장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와 함께 길을 가는데,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아니, 타고 가면 될 것을 왜 저렇게 당나귀를 몰고 가는가?" 들어보니 그럴듯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태웠습니다. 아들이 타고 열심히 길을 가는데, 뒤에서 또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새파랗게 젊은 것은 타고 가고 나이 드신 아버지는 걸어가고, 참 말세로다." 듣고 보니 그랬습니다. 아들이 내리고 아버지가 탔습니다.
한참을 길을 가는데 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니까 사람들이 또 수군거립니다. "저러다가 아들 잡겠다. 아버지는 그렇게 멀쩡히 타고 가고 아들은 저렇게 땀을 흘리며 가니." 듣고 보니 그래서 이제는 아들과 아버지 둘 다 당나귀에 올라타고 길을 갔습니다. 사람들이 또 한참 가는데 뒤에서 수군거립니다. "아니 저분들은 당나귀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가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당나귀가 죽겠다." 듣고 보니 그럴듯해서 이제는 둘 다 내려 당나귀를 어깨에 메고 모시며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으며 넘어집니다. 당나귀가 왕도 아닌데 왕처럼 모시고 왔다고 사람들이 다 웃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솝이 풍자하기 위해서 한 이야기입니다.
자기 줏대 없이 소신 없이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을 풍자하기 위해 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듣고 또 보면서, 우리가 당연히 다스리고 지배해야 할 대상이 있는데 오히려 그 지배해야 할 대상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것은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나라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만장굴이 있는데, 만장굴에서 약 2km 더 들어가면 김녕사굴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굴에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그 굴에는 옛날에 큰 구렁이가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구렁이를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구렁이가 우리에게 생사와 화복을, 길흉을 다 주관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이 두려움을 이용한 마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자처하기를 자신이 구렁이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해서 제물을 받아옵니다. 그리고 구렁이에게 제물을 갖다 바칩니다. 물론 중간에서 자기가 먹고 착복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거기서 조금 더 진도를 나갔습니다. 매년마다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 되는 처녀를 갖다 바쳐야 풍어를 기원할 수 있고, 출항하면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사람들을 혹세무민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는 곡소리가 끊이지를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주판관 서련이라는 사람이 새로 부임했는데, 보니까 가당치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미신이라고, 이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워서 그치지를 않습니다. 서련 판관이 혼자 활과 칼을 가지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굴에 들어갔습니다. 활을 쏘아서 구렁이를 죽였습니다. 칼로 구렁이를 토막 냅니다. 그리고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자기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제주도에 가면 서판관 공덕비가 서 있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고, 한 가지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우리가 당연히 다스리고 지배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에게 우리가 말도 안 되게 지배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이런 일이 이야기 속에만 존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나라, 이 땅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셨는데 도리어 이것이 억압이 되는 것을 끊어내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려가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밥을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돌아서면 허기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길을 가다가 밀밭 사이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이삭을 잘라서 무엇에 쓰려고 했을까요?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이삭을 잘라서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 배가 고프니까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껍질을 털어내고 입에 털어 넣은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문제를 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이 어떤 일이었을까요? 만약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주인이 있는 밀밭에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가서 밀을 서리해서 먹었으니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말했으면, 이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만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식일 규정을 어긴다고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기록합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안식일을 제정하실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만 하셨습니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이 살다 보니까,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거룩히 지키는 것인가 고민하다가 자기들이 유대인의 율법 해석서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