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국회 본회의에서 친권자 징계권이 삭제되었습니다. 이제는 부모라 하더라도, 친권자라 하더라도 자녀를 함부로 체벌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 민법은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는 것을 법으로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건들을 계기로 해서 이제는 법에서조차 부모가 자녀를 체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조항을 제정하고 혹은 삭제하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기 있는 모든 성인들은 과거에 부모님께 매를 맞은 기억이 거의 대부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따뜻한 식사를 제공해 주시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이고, 비가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학교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려 주시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이고, 동시에 자녀가 곁길로 가고 바른 길을 가지 않을 때 그때 종아리가 멍이 들도록 회초리질을 하는 것도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때 맞을 때는 아팠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는 그 부모님의 회초리가 그리워지고, 그때 부모님이 나를 매질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혼내지 않으셨더라면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없었을 텐데 참 감사하다 하는 마음을 이제 성장해서는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표현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원하는 것 다 들어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방으로 모든 것 막아 버리시고, 때로는 징계하시고 꾸짖으시고 견책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 당시에는 괴로웠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나서 보니까, 철없던 시절에 내가 기도한 것 하나님이 다 들어주셨더라면 나는 과연 지금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기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들어주지 않으신 것이, 잘못된 험한 길을 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책망해 주신 것이 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고 고백합니다.
심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이라는 말만 들어도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런데 그 심판 안에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뱀을 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뱀이 에덴에서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 먹게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뱀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뱀을 심판하시는데, 인간 편에서 보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그 심판 자체가 우리에게 주시는 크고 극진하신 은혜인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을 깨닫고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여기서 '이렇게 하였다'는 말은 뱀이 여자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 먹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땅에 있는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서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땅의 흙을 먹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뱀을 심판하신 이유는 뱀이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키워드가 세 가지 있지 않습니까? 흑암에서 빛으로, 공허에서 충만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하나님은 그 가운데 질서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따르면 하나님이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위탁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받아서 대리 통치합니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짓습니다. 동물과 식물은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뱀도 사람의 통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뱀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질서 안에 거하지 않고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하와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하와도 또한 하나님 말씀에 굳게 집을 짓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뱀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어기는 뱀, 그 뱀에게 다시 한번 너의 자리는 바로 이 자리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계십니다. 모든 들짐승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배로 다녀라. 평생 동안 흙을 먹을 것이다. 너는 사람의 지배 아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다시금 질서를 명확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사건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상당히 크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원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말씀의 언약, 그 첫 시작은 십계명이었습니다. 십계명의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로 요약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 사랑이요, 또 하나는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였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함께하는 모든 이웃을 함께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축원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와서 속삭입니다. "너, 위로는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먼저 사랑하면 그럼 너는 어떻게 되는데? 너부터 챙기고, 너부터 사랑해야지. 너를 먼저 챙기고 너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면 그럼 너는 나중에 낙오되고 말 것이다." 사탄은 그렇게 우리를 미혹합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질서를 파괴하고 먼저 자기 사랑에 빠져듭니다. 자기애에 탐닉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부터 먼저 하고, 내가 필요한 것부터 먼저 챙겨 놓고, 그다음 이웃도 생각하고, 그다음 하나님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질서 파괴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주권과 말씀의 언약의 질서는 먼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채워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역사적으로 수많은 타락한 왕들이 이런 미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던 시절도 그랬습니다. 그는 남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합니다. 남유다는 웃시야가,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굉장히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전쟁에 연전연승했습니다. 무역과 상업에 아주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여러 나라와 무역해서 그 나라에 돈이 마르지 않게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물질의 부를 누리는 만큼 영적으로는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데 그 사랑이 흘러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성전 안에 물질이 가득했는데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궁전 안에는 왕과 고관대작들이 물질을 가득히 누리고 자기 멋대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살고 있었으나, 그러나 백성들에게 물질과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5장 24절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