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본문: 창세기 29:31-35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우주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그 이전까지 우주는 미지의 공간이었으나, 그날 이후로 개척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진입 장벽이 높아 우주 정복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상의 부호들은 땅보다 우주에 대한 열정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설립하여 사람을 우주로 보내고 있으며, 2024년에는 화성 탐사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도 블루오리진을 설립하고 나사와 손을 잡아 우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우주 개발은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지난 8월 23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인도의 무인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달 남극 표면에 착륙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대단한 뉴스인 이유는, 불과 3일 전에 러시아가 그 자리에 착륙하려다 실패한 바로 그곳에 인도가 성공적으로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처럼 인도는 선진국도 아니고 부유한 나라도 아닙니다. 그런 인도가 우주 개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세계인들에게는 놀라움이었습니다. 만약 달 남극에서 얼음이 발견되면, 새로운 영토 전쟁이 그곳에서 시작되는데 인도가 그 시작점을 선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지금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6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1960년대부터 인도는 우주에 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그때는 GDP가 100불도 채 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소달구지 위에 통신위성 시험대를 놓고 우주와의 교신을 시도했을 정도입니다. 우주를 향한 열망이 그들에게는 끝이 없었고, 부품을 실어 올 차가 없어서 자전거로 부품을 실어 나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터무니없어 보이는 열망이 1980년에 드디어 결실을 맺습니다.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나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고 2017년도에는 로켓 하나에 무려 104개의 인공위성을 실어서 발사해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된 일은 없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진심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기 때문에 오늘의 결실이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의 성공과 실패는 열정이 좌우합니다. 얼마나 그 일에 대해서 진정성이 있느냐, 얼마나 그 일을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정을 다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의 조건

영적인 부분도 역시 성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 성장, 신앙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성장은 세상적인 성장이나 성공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세상적인 성장은 열심히 하고 진정성을 가지면 되지만, 신앙 성장과 영적 성장에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봐야 하고,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살피고 회개하는 과정이 영적 성장에는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는 레아의 고통이 나옵니다. 레아는 고통스러운 여인이었고 한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남편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레아는 고통 중에 영적 성장을 이루어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지, 발전하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아서 7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 동안 종처럼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 눈 떠보니 바로 곁에 누워 있는 사람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왔습니다. 외삼촌에게 찾아가서 따지고 화를 냈습니다. 라반은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말했습니다. 7일 동안 잔치를 망치지 않으면 라헬을 바로 주겠다고, 그리고 다시 7년 동안 자신을 섬기라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거기서 야곱이 멈추고 자기를 돌아봤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4년 동안이나 외삼촌 라반에게 묶여 있게 되었습니다. 14년 동안이나 꼼짝없이 거기서 종처럼 일하게 된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가정에 한 자매가 함께 부인이 된 것입니다. 야곱의 아내가 둘이 되었는데, 레아와 라헬은 자매지간입니다. 야곱, 레아, 라헬 이 세 사람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가장 심각하게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레아입니다.

레아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이용당했습니다. 아버지 라반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외삼촌을 7년 동안 섬기겠다고까지 했던 것을 라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레아를 끼워 넣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정직함과 강직함을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7년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레아를 끼워 넣은 것입니다. 딸을 이용했습니다. 첫날밤에 레아를 신방에 밀어 넣고, 그리고 다시 7일에 7년을 더하는 제안을 했습니다. 14년 동안 야곱을 묶어 놓기 위해서 레아를 이용했습니다. 딸의 행복이나 딸의 가정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버지 라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딸을 이용해 먹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레아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자신의 행복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이용했고, 자신은 아버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났겠습니까? 세상에 이런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 딸의 행복을 이런 식으로 짓밟아 버리는 아버지가 진정한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라반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레아는 거기에 희생양이 되었고, 그것 때문에 인생이 불행해졌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상관없습니다. 기왕에 결혼했으니 남편이 사랑을 주면 견딜 만하고 살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야곱의 눈빛을, 남편 야곱이 레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땠겠습니까? 경멸의 눈, 차가운 눈빛이 아니었겠습니까? "너는 내 인생에 걸림돌이다. 너만 없었다면, 아버지가 널 밀어 넣는다고 해서 네가 들어오느냐. 네가 거기서 안 된다고 해야 되지.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망쳤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14년 동안 이렇게 꼬였다. 너만 없었다면 나와 라헬은 행복하고 즐거웠을 텐데, 네가 들어서 내 인생이 이 꼴이 되었다." 야곱은 레아를 그런 식으로 경멸했을 것입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그리고 가슴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레아의 심정이 상상이 됩니까? 사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사랑받는 것이 정상인데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돌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정상인데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왜 없겠습니까?

보고 계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아버지도 자신을 이용하고 남편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하나님은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다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알기나 할까?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나는 이런 고통 가운데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아시기나 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밧단아람 하란 저 시골 구석에서 한 여인 레아가 아버지에게 이용당하고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셨고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피조물, 우리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은 비단 레아뿐만이 아닙니다. 하갈에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셨습니다. 하갈은 애굽 여인입니다. 아브라함 집에 여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주인 사라가 임신하지 못하자 하루는 사라가 하갈을 자기 남편에게 줍니다. 아브라함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임신했습니다. 그때부터 여주인의 학대가 시작됩니다. 사라가 그녀를 괴롭게 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무작정 집을 나왔습니다. 정처 없이 사막을 헤매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그가 없어져도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막을 헤매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려도 누구 하나 여종의 죽음에 대해서 눈 깜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