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29:21-30
지난 6월 경찰은 불법 사금융 범죄조직 일당 123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 조직은 2012년 4월부터 영세 자영업자들, 가정주부들,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소액 대출을 해주고 연 5천%에 달하는 이자를 갈취했습니다. 법정 최고 이자가 20%이니 무려 250배에 해당하는 고리대금입니다. 이들의 수법은 이렇습니다. 인터넷에 소액 대출 광고를 올린 뒤, 찾아오거나 연락한 분들에게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에 50만 원을 갚으라고 합니다. 어떻게 30만 원이 일주일 사이에 50만 원이 됩니까? 그런데 당장 돈이 급한 분들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대출받습니다. 일주일 뒤에 돈을 갚지 못하면 이자가 원금으로 치환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일정 기간 동안 돈을 갚지 못하면 또 다른 대부업체를 소개해줍니다. 빚을 내어 빚을 갚게 하는 구조로 다중 채무자를 만들어 버리는데, 알고 보면 모두가 한통속입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서운 추심이 기다립니다. 피해자들의 얼굴을 인쇄한 전단지를 직장 주변에 뿌리기도 하고 가족들을 협박하기도 합니다. 심한 협박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약 130명에 이르렀고 피해액은 5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방식의 사기를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합니다. 세월이 악해져서 그렇다고들 말하지만, 수법이 다양해져서 알아채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사기꾼이 없었겠습니까?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이래로 세계 어디에나 사기꾼들이 있었고, 사기 행각은 있어 왔습니다. 갈수록 진화하고 악해져 가는 것 이외에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라반도 사기꾼입니다.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7년 동안 갈취했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7년을 더 갈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런 라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교훈 얻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약속의 사람, 축복의 계보 가운데 있는 사람, 사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인데 사명이 본질이고 결혼은 비본질입니다. 그런데 비본질인 결혼에 발목 잡혀서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으며, 자기 부모님께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고 칠 년의 세월을 흘려버리고 맙니다. 사명의 시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인간적으로 야곱과 라헬에게는 그 시간이 달콤했습니다. 서로 연애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7년을 마치 며칠처럼 여길 정도로 이들은 서로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갔습니다. 몸으로 떼운 노동력의 기간, 결혼 지참금을 다 갚은 기간이 지나갔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합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 29:21)
7년을 다 채웠으니 내 아내를 달라고 당연히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라반이 순순히 결혼을 시켜줍니다.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일가친지들을 모아 잔치를 열어줍니다. 당시 고대 근동의 결혼식 잔치는 대개 일주일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일주일이면 결혼 잔치에 다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날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창 29:23)
라헬이 아닌 레아가 첫날 밤에 신부로 들어왔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야곱은 당연히 라헬이 신부인 줄 알았습니다. 레아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이 작정하고 벌인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운 캄캄한 밤에 신부를 레아로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첫날 밤이 지나고 아침에 눈 떠보니 곁에 라헬이 아니라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야곱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레아를 위해서 7년을 봉사한 것이 아닌데, 나는 라헬을 위해서 7년 동안 일했는데, 눈 떠보니 레아가 누워 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외삼촌에게 찾아가서 따집니다. 왜 이렇게 하시느냐고. 그러자 라반이 침착하게, 아주 차분하게 대답합니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 29:26-27)
차분하고 침착하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라반이 대답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치밀하게 짜인 각본, 시나리오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이 지방에서는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법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 말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야곱은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외삼촌에게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품삯을 정할 때 "제가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원래 이것이 이 지방의 법이었다면,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이 이 집안의 법이 아니니 레아를 먼저 시집보내야 한다, 그래서 너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레아를 위해서 신랑감을 찾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라, 그리고 나서 라헬을 너에게 보내주겠다, 그렇게 말해야 옳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지방의 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리고 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이미 잔치가 열렸는데, 오늘이 첫날이 지나고 둘째 날인데, 잔치판을 깨지 마라, 멀리서 이웃들이 오고 일가친지들이 왔는데 네가 여기서 잔치를 엎어버리면 내 낯은 뭐가 되느냐, 일주일 동안 이 잔치를 무사히 잘 치르게 하면 잔치가 끝나고 나서 라헬을 너에게 주겠다, 그리고 나서 네가 라헬을 선불로 받았으니 7년 동안 또 나를 섬겨라. 이것을 어떻게 거절합니까? 야곱의 목적은 라헬이었는데, 7일 동안만 잘 견뎌주면 라헬을 주겠다고 하는데. 이미 준비된 각본, 시나리오입니다. 7일을 던져놓고 7년 동안의 노동력을 사취하는 것입니다. 라반은 완벽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고 하나님은 결단코 건너뛰는 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뒤바뀌었습니다. 첫날밤에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라헬인 줄 알았는데 레아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짓은 이전에 이미 야곱이 한 행동입니다. 창세기 27장에 자기 아버지 이삭이 기력이 쇠하여 시력이 떨어져서 사람을 분간할 수 없을 때, 아버지 이삭은 에서인 줄 알고 축복하려고 했는데 그때 야곱이 거기에 끼어들었습니다. 자기 형 에서의 옷을 입었습니다. 염소 털로 목과 손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가서 에서인 척했습니다. 사람이 뒤바뀌었습니다.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그대로 당했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뿌린 대로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