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서원

본문: 창세기 28:20-22

통일신라 시대에 뛰어난 학자 한 분이 계셨습니다. 최치원이라는 분입니다. 857년 통일신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출중하여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나라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 급제를 한 후 그곳에서 관리가 되어 충분히 인정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라의 진성 여왕이 그를 불러들입니다. 함께 신라를 개혁하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니 와서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개혁이란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법입니다. 당시 성골과 진골 귀족들이 그의 개혁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앙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좌천되어 천령군, 현재의 함양군 태수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중앙 관료가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좌천되면 낙망합니다. 이제 다시는 일하지 않겠다, 내가 여기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최치원은 달랐습니다. 자기가 그곳에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매년 홍수가 일어나 함양군 일대를 물에 잠기게 했습니다. 이 일을 내가 해야 되겠구나 결심한 그는 중앙에서 세금을 가져와 땅을 파서 물길을 바꾸고 제방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심었는데, 이것이 독보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둑과 제방을 쌓는 일은 일상적이었으나 나무를 심는 일은 그가 최초였습니다. 나무를 심어서 뿌리가 깊게 내리면 뿌리끼리 얽히고설키며 제방을 단단하게 붙잡아 주어 홍수가 와도 잘 무너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치원이 이룬 숲이 넓어져 상림, 중림, 하림이 되었습니다. 농지개발과 도시개발로 중림과 하림은 사라지고 지금은 함양의 상림숲만 남아 있습니다.

최치원의 예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적어도 관리라면 세금을 이렇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세금을 내야 합니다. 과거 백성들도 그렇고 지금 국민들도 납세는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세금은 열심히 내는데 이 세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지 모르면 화가 납니다. 도대체 이 세금은 누가 쓰는 것인지, 어떤 사람이 이 세금을 먹고 배부른 것인지 출처와 경로를 알 수 없으면 사람들은 세금을 내기 싫어합니다. 강력한 조세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세금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헌금을 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또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사용하는 이는 교회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직분자들, 교회 책임을 맡은 중직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합니다. 열심히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는데, 예물을 드렸는데, 예물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헌금할 맛이 나겠습니까? 헌금하기 싫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도 성경에 나와 있는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의 서원 기도가 나오고 야곱의 십일조 다짐이 나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둘 다 틀렸습니다. 야곱은 서원 기도도 잘못했고 십일조 다짐도 잘못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잘못되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불안이 낳은 서원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길을 떠나 밧단아람까지 8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는 도망자였습니다. 그는 실패자였습니다.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도망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결단합니다. 하나님, 제가 가는 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늘의 문을 여시고 저를 복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이어서 드린 기도가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0-21)

야곱이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서원 기도는 아주 간절할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민수기 30장에 보면 서원 기도는 반드시 지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서원 기도의 핵심은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외도 있습니다. 민수기 30장에 예외 규정이 적혀 있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미성년의 딸아이가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서원을 합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딸이 서원 기도를 드렸는데 도저히 허락해 줄 수 없는 서원이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아버지의 직권으로 서원 기도를 무효화할 수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꽉 막힌 분이 아닙니다. 네가 서원 기도를 했으니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어떤 기도를 했든지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살피시고 미성년의 딸이, 아직 신앙적으로 온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가 순간의 감정으로 서원 기도한 것을 무효화시켜 주시기도 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미성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신앙을 가진 성숙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서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사 입다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라 그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바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바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새" (삿 11:29)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사기에 나오는 전형적인 표현인데,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우실 때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자기가 가장 먼저 알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압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그가 능력을 행하고 사람이 달라집니다. 이번에 하나님이 이분에게 하나님의 영을 보내셨구나, 하나님이 이 사람을 세워서 암몬 자손의 손에서 우리 민족을 구원하려 하시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을 보내 주셨다는 것은 너는 이제 하나님의 영을 받았으니 암몬 자손과 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손에서 건져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았으니 이제 나가서 전투하고 싸워서 승리하면 됩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서 입다가 불필요한 서원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 11:30-31)

이렇게 서원 기도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장 먼저 누가 달려 나옵니까?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이 달려 나오지 않았습니까? 서원 기도를 했으니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