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본즉

본문: 창세기 28:10-15

지난 4월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오스텔하임에서 시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때 시장에 당선된 사람은 29세의 청년 리안 알세블였습니다. 20대 청년이 독일의 소도시라 하더라도 시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분이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독일에 온 지 8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이분의 진면목과 열정, 실력을 알아본 알텡슈테트 시의 괴츠 시장의 안목, 그리고 이 사람의 열정과 넓은 마음 덕분이었습니다. 2015년 리안 알세블은 여느 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시리아 내전을 견디지 못하고 고무보트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여 유럽으로 건너왔습니다. 생명을 걸고 와서 겨우 살아남아 독일에 정착한 것입니다.

1년이 지난 2016년, 알텡슈테트 시에서 시청 인턴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면접을 보았지만 사람들은 그를 거절했습니다. 거절의 이유는 아직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손으로 하는 일을 알아보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빵을 하든지, 재봉을 배우면 어떻겠느냐는 합리적이고 합당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앞서가는 나라 독일의 시청 행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사도 열심히 하고 밝은 얼굴로 허드렛일도 좋으니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고 찾아왔습니다. 이런 그의 밝은 모습과 열정을 눈여겨보았던 괴츠 시장은 그를 전격적으로 인턴으로 영입합니다. 작은 일부터 한 가지씩 해보라고 일거리를 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으며, 장벽이었던 언어도 완벽하게 극복해냅니다. 시간이 지나서 정규직을 뽑는 시험이 있었고, 그 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히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정식 직원이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실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고, 공공 분야의 학위 과정을 이수하게 됩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높여갔습니다. 주변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친절했으며 자기 분야에서 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바로 옆 도시인 오스텔하임에서 시장 선거가 있었는데, 괴츠 시장이 그에게 출마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무슨 시장 선거에 출마합니까? 그런데 할 수 있다고, 당신이 가진 전문성이라면, 그 열정이라면, 또 친화력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시청 직원들도 모두가 출마를 권유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출마했고 당당히 당선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이 사람이 입지전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것만이 관심이 아닙니다. 이분은 현실이 비참했습니다. 난민의 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보트 타고 유럽 대륙으로 건너온 난민입니다. 언어도 서툴고, 그저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것에 감사해야 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을 가졌습니다. 더 큰 꿈을 가지고 배워보겠다, 열심히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 기회를 붙잡고 열심을 다해서 일어났습니다. 결국 8년 만에 자기 힘으로 일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이 청년 외에도 우리도 역시 비참한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멀쩡하게 이 자리에 앉아 있어서 그렇지, 남들에게 제 형편이 이렇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이렇습니다 말할 수 없어서 그렇지, 우리 인생도 밑바닥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난민이 아니라서 그렇지 영적 난민으로 사는 사람도 많고, 우리 인생도 힘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현실에 지쳐서 꿈을 가지지 못합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 한번 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사느라 지쳐서 힘들게 그냥 살 뿐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이기게 하는 것은 꿈이고 비전입니다.

밑바닥에 떨어진 야곱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야곱도 역시 그런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야곱의 현실은 밑바닥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꿈을 갖게 하셨고, 그는 그 꿈을 쫓아서 현실을 극복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갑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 들려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형이 그를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뜁니다.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피신시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도주였고 피신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부르심이었고 그를 믿음의 자리에서 달구어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는 지금 훈련받고 있는 중입니다.

훈련에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두 가지 요소, 그 첫 번째는 고통입니다. 훈련은 고통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군대에서 군인들을 훈련시키는데 편안하게 훈련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극한의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 한계를 뛰어넘는 고통이 있어야 그 고통을 넘어서 다음 성장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도 고통이 따르고 무엇을 해도 고통은 훈련에 필수적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쐬면서 집에서 두발 뻗고 누워 잠자는 것을 훈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이 고통으로만 끝나버린다면, 그냥 고통만 받다가 인생 고생만 하다가 끝나버린다면, 그것을 훈련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훈련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지향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훈련을 잘 이겨내고 나면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까?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까? 이 훈련을 잘 받고 나면 나는 얼마만큼 성장해 있을까? 그 기대감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비전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을 꿈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훈련에는 고통과 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고통의 이유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이 고통의 이유는 비전을 성취하기 위함이라는 것,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훈련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야곱은 고통받았는데 그 고통에 꿈이 더해집니다. 먼저 야곱이 받은 고통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 28:10-11)

야곱이 자기 집 브엘세바를 떠나 밧단아람 하란으로 가는데, 그 거리가 무려 80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직선거리로 800킬로미터이니, 걸어서 꼬부랑길을 가면 얼마나 오래 걸리겠습니까? 가다가 운이 좋으면 마을을 만나고, 더 운이 좋으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하룻밤을 거기에 유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시간은 노숙하는 것입니다. 홀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는 이 길에서 노숙하는 것을 밥먹듯 하고 살아갔습니다.

노숙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돌을 베개 삼아서 누워 잠자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후회가 막심하지 않았겠습니까? 영적인 욕심을 가지는 것은 좋았으나, 그 영적 욕심을 이루는 방법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때 그 거짓말을 해서 형을 저렇게 속이고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부모를 떠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정을 떠나서 이 고생길에 들어섰다고 후회가 막급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되는데, 그 후회가 매일 밤마다 찾아왔을 것입니다. 원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 나는 안 하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부추겨서 거짓말을 하게 하고 아버지 앞에 가서 머리 들이밀고 안수 받은 것이 지금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그는 밤마다 눈물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낮에는 강도의 위협도 만났을 것이고, 밤에 노숙하면서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를 들으면서 맹수의 위협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 고통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그가 내적인 힘과 은혜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매 순간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듯한 경험을 하고 삽니다.

성경에 이런 종류의 고통을 겪은 사람은 야곱뿐만이 아닙니다. 다윗도 역시 그랬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