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특강 10강 - 일상의 거룩 음식 (레17장)

레위기 17장 3-4절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우리가 레위기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부터 레위기의 새로운 분기점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아홉 번에 걸쳐 16장까지 나누었고, 오늘부터 마지막까지 17장부터 27장까지를 함께 다룹니다.

1. 레위기의 두 기둥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에서 16장, 그리고 17장에서 27장까지입니다. 1장에서 16장까지는 예배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다루고, 17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예배드린 사람의 삶과 실천에 대해서 다룹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항상 이렇게 두 가지 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리가 앞에 나왔고 삶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배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은혜받은 자가 세상에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 올바른 신앙생활, 균형 잡힌 믿음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기가 쉽습니다.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든지, 아니면 여기에 한 발을 두고 마음은 계속 세상에만 가 있든지. 그런데 하나님 믿는 사람은 둘 다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쪽에 한 발, 저쪽에 한 발 두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둘 다를 하나님께서 잘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1. 1장에서 16장까지의 요약

1장에서 16장까지의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하면, 전체가 예배에 관한 것이지만 1장에서 7장까지는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 제사를 다루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를 집례할 제사장이 중요하니까 8장과 9장은 제사장의 위임식을 다룹니다.

10장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아론의 네 아들 중에 첫째와 둘째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집례했는데,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거기에서 불이 나와 그 자리에서 타 죽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본보기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려야 되겠구나, 이건 죽고 사는 문제로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1장부터 15장까지는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정결한 삶에 대해서 다룹니다. 16장,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은 전체를 다 집대성하는 대속죄일 규례와 아사셀 염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1-2. 시내산에서 주신 이유

이렇게 해서 예배적인 부분을 다루고 삶에 대한 부분으로 들어가는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마음에 새겨야 될 사실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이 말씀을 어디에서 선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루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1차 기착지로 삼으신 곳이 시내산입니다. 급하게 휘몰아쳐 달려왔습니다. 시내산에 일단 여장을 풀게 하시고 거기에서 멈추게 하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성막이 만들어지고 이 안에 들어가서 예배드릴 규정과 규례를 설명하신 것이 이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나,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빨리 가는 것입니다. 빨리 가나안 땅에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정 중에 있는 과정입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라도 빨리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예배 드려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너무너무 세세합니다. 너무너무 세밀하고 세세한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리 펴고, 거기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 다 내쫓고, 그러고 나서 주시면 이제는 정신 차리고 알아듣고 그대로 할 텐데, 왜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것도 시내산에서,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한 이 시점에 말씀하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좀 편안해지면 하나님 말씀이 더 잘 들어올 텐데, 나는 지금 돈 문제도 있고 자식 문제도 있고 몸도 불편하고 여러 가지가 복잡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꾸 나에게 예배를 말씀하십니다. 자꾸 나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 내가 급한 것은 이게 아닌데, 지금 내 인생에 급한 것은 빨리 이 광야 생활을 종지부 찍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인데, 하나님은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이 주시려고 작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나안 땅은 보장된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없으시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다가 중간에 마무리할 거면, 그냥 말 거면, 하나님은 확실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집어넣으시려고 출애굽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보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될 사람들의 내면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만 급합니까? 우리 눈에는 빨리 광야를 벗어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것입니다. 내 인생에 원하는 게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네가 얼마나 바른 마음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고 자꾸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