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옥중서신 열 번째 시간입니다. 여섯 번째 시간까지는 에베소서 말씀을 공부했고, 이제 네 번에 걸쳐서 빌립보서 말씀을 공부하여 오늘이 빌립보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었고, 빌립보서는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기쁨은 어떤 상황에 좌우되는 기쁨이 아닙니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기쁨,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기쁨을 가지고 끝까지 관통하며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 기쁨, 그런 기쁨을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기쁨이 가능할까요? 돌아보면 우리는 상황에 많이 좌우됩니다. 좋은 일이 있어야 하고, 행복한 일이 있어야 웃습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서 말씀에서 늘, 자주, 아주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씀이 "주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사실 빌립보서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 안에 있습니다.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 감옥이라는 상황을 말하지 않고 "주 안에 있다"는 본질을 말합니다.
빌립보서는 성화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칭의 이후에 성화, 성화 이후에 영화, 이것이 구원의 단계입니다. 그런데 칭의라는 것은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피를 바르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므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그것을 "주 안에서"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화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것은 유혹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 때로는 정욕적인 유혹들이 있고, 가난의 유혹도 있고,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주 안에 있음으로 극복하면 본질적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4장 이야기도 성화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본질적 기쁨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요청합니까? 1절에서 3절까지 보시면 바울이 세 가지 명령어를 사용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첫 번째 명령이 "주 안에 서라"입니다.
여기 좋은 말은 다 들어 있습니다. 사랑, 사모, 기쁨, 면류관. 성도들을 표현할 때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표현할 때 이런 수식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1절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주 안에 서라"는 것입니다. "서다"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스테코(στήκω), 굳건하게 서다, 견디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아이가 이제 막 젖을 먹는 아이가, 아직까지 젖을 떼지 못한 아이가 굳건하게 서거나 견딜 수 있습니까? 그것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굳건하게 설 수도 없고 견딜 수도 없습니다. 젖을 먹는데 어떻게 견딥니까? 굳건하게 서고 견디고 힘이 좀 생기고, 어떤 고난이나 환란이나 위기가 닥쳐와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이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도 그것을 하기가 좀 힘듭니다. 특히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성인이 좀 되어야 유혹이나 환난이나 어려움이 와도 굳건하게 견딜 수 있습니다. 그것을 버티고 이겨낼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관해서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 말씀입니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여기 보면 "때가 오래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신앙생활을 오래했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는데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정상입니다. 남들보다 앞서고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만 먹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성인이 되고 영적으로 단단히 서서 주 안에서 굳게 서서 버티고 견딜 수 있는 힘은 신앙생활의 연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 30년, 40년 하고, 믿음이 3대, 4대 내려간다 하더라도, 그래도 작은 시험이 오면 흔들려 버리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것은 믿음의 연수와 상관이 없습니다.
13절과 14절을 보면 "젖은 어린아이의 것이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14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성인이 되고 견디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세 가지를 해야 됩니다. 첫째 지각을 사용한다, 둘째 연단을 받는다, 셋째 선악을 분별하는 자다.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먼저 지각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견디고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룬 사람이면 지각을 사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지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성, 판단력, 오감, 경험 등등을 다 통합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믿음이 어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자꾸 물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기는 판단이 안 서니까, 나로서는 도무지 판단할 수 없으니까 "우리 목사님에게 가보자" 합니다. 목사에게 오면 그나마 다행인데, 어디 기도원 원장님에게 가고, 기도원 원장님까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어디 점보러 가버리고, 어디 용하다는 점집에 가버립니다. 교회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 집사님쯤 되어서 자꾸 무엇을 물으러 갑니다. 자기 지각을 사용할 줄 모르고 뭔가 보다 신비해 보이는 사람에게, 신통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자꾸 물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작은 환난이 와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각을 사용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이성도 주시고 분별력과 판단력을 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사용해야 되는데, 그것을 잘 사용해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되는데, 지금 이 상황이 내가 견디는 상황인지, 아니면 그냥 놔야 되는 상황인지, 어떻게 해야 되는 상황인지를 정확하게 판단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못하고 계속 물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젖을 먹는 사람이나 하는 짓입니다.
또 "연단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연단은 훈련입니다.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의 훈련과 영혼의 훈련, 마음의 훈련을 다 포함하는 뜻입니다. 훈련을 받지 않으면 성장이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훈련받지 않고 어떻게 성장하려고 할 수 있습니까? 훈련받지 않고 계속 젖만 빨려고 하면 단단한 음식을 씹어서 소화시키고 넘길 수 있는 소화력과 근력이 생겨야 되는데 그것을 못하면 어린아이로 계속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서서 걷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선악을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각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각을 사용해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벌어서 내 물질입니다. 그런데 그 물질을 사용하는데도 선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각과 분별력입니다. 시간도 내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을 선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로 선하게 사용하기도 하고 악하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항상 우리는 선과 악을 이야기하면 착한 마음, 나쁜 마음, 검은 마음, 흰 마음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선악 구분은 항상 시간이나 물질이나 건강이나 등등의 모든 판단의 순간순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 그것이 선입니다. 물질을 사용하더라도, 시간을 사용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사실 이 지도자에게 하는 말씀인데, 지도자는 독립된 신앙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킨 목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그것이 드러나는데, 예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나가라" 하십니다. 가라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내보내시는 것입니다. 굳건하게 설 수 있으니까 내보내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기어 다니고 젖만 빨고 있으면 어떻게 내보냅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목적은 독립된 신앙 인격으로 지각을 사용하고 연단을 받아서 선악을 분별해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내보내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목양하는 목적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장해서 굳게 서서 지각을 사용하고 선악을 분별하고 훈련 잘 받아서 독립된 신앙 인격으로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하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못하게 하고 모든 일에 판단을 못하게 하고 어린아이로 만들게 하면, 그것이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 아닙니까? 계속 목사에게 종속시키고,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하고, 무엇이든지 집을 파는 것도, 자녀들 결혼시키는 것도, 무엇을 하는 것도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하면, 그것이 사이비이고, 그것이 이단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이단의 길입니다. 결국 모든 신앙생활은 독립된 신앙 인격으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각을 가지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얼마나 독립되어 있나, 나는 얼마나 잘 분별하고 있나, 이것을 한번 살펴보셔야 됩니다.
2절을 보면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이 "권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 "권하다"라는 말이 "식사하세요, 고기 드세요" 이런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라는 단어는 초청하는 뜻입니다. 위로하는 뜻입니다. 초청하다, 위로하다.
유오디아라는 분과 순두게라는 분은 여성입니다. 지금 이것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빌립보 교회 여성 지도자 두 분이 계신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원래 자색 옷감을 파는 장사인 여성 루디아라는 여인으로부터 시작된 교회이니까 여성들이 많습니다. 여성 지도력이 강한 교회인데, 유오디아 권사님과 순두게 권사님이 서로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고 영향력도 상당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권하노니", 이 말은 초청해서 위로하는 것입니다.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