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후서 11장 2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오늘은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제목으로 고린도후서 열 번째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영적 성장과 영적 전투를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원하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가질 수 없습니다. 영접해야 합니다. 시시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결국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열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의 반대 개념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자기 열심이라는 교차되는 반대 개념도 함께 살펴보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은 무엇을 이루셨는지도 함께 보겠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면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11장에서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11장과 12장 전체를 보면 바울의 자기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은 자기 자랑을 전혀 하지 않았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 자랑을 좀 합니다. 11장과 12장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말씀이 가장 인간적이고 또 바울의 사적인 고백을 볼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 곧 자기 자랑을 하기 전에 용납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그런데 자기 자랑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 자랑입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서 나타나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이기에 결국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11장과 12장은 그래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2절은 우리가 아까 읽었던 말씀인데,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말은 우리 귀에 좀 익숙합니다. 유명한 책 제목이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하면 당장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며 성실하게 일하시는구나 하고 단순히 생각하면, 하나님의 열심은 상당히 수준 낮은 별로 말할 거리가 없는 열심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방향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에 대해서 열심이신가 하는 방향이지요. 하나님은 무엇에 대해서 열심이십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입니다. 구원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은 열심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일에 열심을 별로 내지 않으십니다. 곧 이 열심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젤로스(ζῆλος)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열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당신의 열정을 불태우시는가?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모든 전력을 다하시는가? 구원입니다. 인간의 구원이겠지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의 구원,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모든 각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열심을 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열심의 방향이 구원이라는 것, 이것이 첫 번째 요소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하나님의 열심이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속성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은 열심을 내시는가? 끝까지 지속적입니다. 구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을 한번 보십시오. 아브라함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통해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고 응답했습니다. 따라나섰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을 구원을 위해서 얼마나 집요하게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시는지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넘어질 때도 있잖아요. 죄 지을 때도 있잖아요. 하나님 부르신 약속의 땅에 왔는데 기근이 있으니까 애굽으로 갑니다. 다시 불러 올리십니다. 나중에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그리고 무려 13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한 번도 찾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시고 할례 언약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또 이삭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열심으로 구원을 향한 방향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집요하게 계속해서 아브라함과 함께 가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다음 시험에 듭니다. 이삭에게 푹 빠집니다. 다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 가서 "네 아들, 네 독자, 네 사랑하는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이끌고 가십니다. 지속성을 가지십니다.
세 번째가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향한 방향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가 지속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열심의 마지막 최종 절정은 모든 것을 다 거셨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올인입니다. 다 거셨습니다. 어디까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 정도 되어야 우리는 열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방향, 두 번째는 지속성, 세 번째는 다 걸기.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의 핵심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열심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그러면 이제 바울이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이 말은 나도 하나님처럼 너희의 구원을 위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 지속적이겠다, 포기하지 않겠다, 집요하게 너희의 구원을 계속해서 요청하겠다, 그 일을 위해서 애쓰고 힘쓰겠다, 그다음 내 모든 것을 다 걸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아닙니까?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어떤 것이 우리에게 부족합니까? 다 부족한 사람도 있고, 한 가지만 부족한 사람, 혹은 두 가지가 좀 모자란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열심을 낸다고 표현할 때, 사실은 자기 열심인데 하나님의 열심으로 포장되어 있는 가짜 열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에 대입해 보면 됩니다. 나는 방향성이 구원을 위한 열심인가? 우리 방향이 어떻습니까? 타인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열심을 내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가 교회 사역을 하고 감당하고 직분을 맡고 애쓰고 힘쓰고 있는 일이 과연 영혼 구원을 위한 열심인가?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 순수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자기 의에 대한 열심이 있고, 자기 명예와 자기 체면을 위한 열심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나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 여기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열심을 닮아가고 배워 간다는 뜻인데, 이 방향이 중요합니다. 이 자기 열심은 방향이 틀려 먹었습니다. 내 영광을 위해서, 타인의 구원과 아무 상관없이 자기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자기 열심이 있습니다.
두 번째, 지속성이 떨어집니다. 이 자기 영광을 위한 열심은 당연히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자기 영광을 취했습니다. 그러면 먹을 것 먹었잖아요. 그것이 끝이지요. 더 이상 열심 낼 이유가 있습니까? 자, 내 목표가 직분이었습니다. 내 목표가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면 끝났는데, 더 이상 열심을 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패해도 열심을 낼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습니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이 꺾입니다. 그것이 자기 열심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다음, 모든 것을 다 걸 수 있는가? 영혼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도 남길 것 다 남깁니다. 그다음을 생각합니다.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 내 모든 전력을 다 쏟아붓지 않습니다. 마치 직장 생활 하듯이 말입니다. 직장에서 전력을 다 쏟아부으면 가정에서 내가 쏟을 힘이 없으니까, 직장에서는 한 30퍼센트, 가정에서 또 한 30퍼센트, 여가 생활을 위해서 20퍼센트, 그다음에 개인 생활을 위해서 또 얼마, 이런 식으로 자기 인생을 포트폴리오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에도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다 쏟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들까지도 그냥 시간 되면 퇴근하고, 시간 되면 출근하고, 그렇게 삽니다. 그것이 무슨 하나님의 열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