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린도전서 특강 열 번째 시간입니다.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번째까지 왔습니다. 열 번째 시간에는 12장을 공부하는데,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펴본 문제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교회 분열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냥 자기들끼리 분열한 것이 아니라 교회 영적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나는 누구 편"이라며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어 분열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굉장히 길게, 굉장히 체계적으로 책망했고, 그러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음행의 문제가 있었고, 또 성도들끼리 송사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송사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 옳다고 여기고 그것만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책망하셨고, 그다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문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성만찬의 문제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따져보면 참 골치 아픈 문제들인데 답은 있었습니다. 그 답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그 원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이 참 복잡하지 않습니까? 매일같이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나한테도 문제가 있고, 가정에도 있고,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있고, 일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원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굉장히 단순한 원리인데 그 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사탄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며, 자꾸만 남 탓하게 만들고 환경 탓하게 만들고, 그리고 내 인생의 과거를 탓하게 만듭니다. 인생 과거를 탓하면 어디까지 올라갑니까? 부모 탓, 조상 탓, 가정 탓, 나라 탓, 탓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전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결론지으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끌고 와야 문제에 해답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성령의 선물, 은사 문제도 결국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에게로 귀결됩니다.
첫 번째 질문을 보시면, 영적인 현상에 대한 바울의 입장입니다. 교회 안에 영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영적인 놀라운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병들었던 사람이 낫는다거나, 도무지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멀쩡하게 돌아다닌다거나, 귀신 들려서 예배를 소란하게 하고 방해하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간다거나, 등등의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 현상에 대한 바울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1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중 부정입니다.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강한 긍정입니다. 알기 원한다,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 무엇입니까? '프뉴마티콘'(πνευματικῶν), 초자연적인,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고 벗어나는 초자연적인 영적인 현상이 교회 안에 일어나는데, 너희들은 이 일의 배후에 누가 계신지, 이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나는 너희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지성적인 태도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고, 우리의 세계를 벗어나는 일들을 사람들은 "야, 그냥 믿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바울은 이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명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 배후에는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려면 뒤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신령한 일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데, 이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는 그 배후에는 누가 계시는가, 성령이 계시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는 누구입니까? 로마 황제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가 있는 자리, 고린도 성도들이 거하는 자리가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항상 고백을, '주'라는 고백을, 최고 존엄과 최고 위엄에 대한 고백을 로마 황제에게 올려드립니다.
로마는 굉장히 독특한 식민지 통치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황제 숭배 사상입니다. 로마가 어느 땅을 지배하면 거기에 로마 황제의 흉상이나 동상을 만들어 두고 신전을 하나 만들어 둡니다. 로마 황제가 신의 아들이라 하여 신전을 만들어 둡니다. 그리고 거기 가서 경배하게 하고 절하게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그 지역의 문화도, 그 나라의 법도, 그들의 언어도 다 사용하게 해줍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로마의 신민이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요.
피지배국 입장에서 보면 그냥 주인만 바뀌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자기네들이 다른 신을 섬겼는데 이제부터는 로마 황제를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차피 지금까지 온갖 잡신을 다 섬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 하나님만 섬겼는데, 이 하나님이 아닌 로마 황제를 주로 섬기라고 하니 그것은 하기 힘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옛날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하라고 강요한 것처럼,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사참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조상들 묘소에 가서 절했고, 지금까지 자기 집 짓더라도 사당 만들어 놓고 거기 가서 계속 제사에 엎드렸는데, 신상에게 절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목숨을 걸어야 되는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로마 시대의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목을 내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문화에서, 지금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이 문화에서 "예수는 주시다"라고 고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을 걸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배경에는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