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밖에서 (눅2:8-14)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를 꼽으라면 정약용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정약용은 1801년 어린 순조 임금의 섭정을 맡은 정순왕후가 대규모로 천주교를 탄압할 때 거기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떠납니다. 금방 갔다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 세월이 자그마치 18년 동안이나 이어집니다. 그가 전국 각지로 유배를 다녔는데 그중에 꽤 오래 머물렀던 곳이 경상도의 장기와 전라도의 강진이었습니다. 이 18년의 세월 동안 그분은 우리가 아는 주옥같은 명작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만 남긴 것이 아닙니다.

약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거기에 시와 산문과 수필까지 수없이 많은 글들을 썼습니다. 그분이 남긴 시와 산문, 수필을 보면 유배 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 있고, 중앙의 정치 관료로서 도저히 몰랐던 백성들의 삶과 애환, 그로 인한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후학들도 양성했습니다. 후배 실학자들도 많이 길렀습니다. 황상, 이학래 등의 아주 탁월하고 특별한 제자들을 기르는 데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면 만약 정약용에게 이 18년의 유배 생활이 없었더라면 이 500여 권의 대단한 저술과 시와 산문들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18년 동안 먼 길을 돌아왔기 때문에 그가 남긴 위대한 작품들이 오늘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깊은 밤과 같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언제 사약을 받으라 할지 모르는 상황도 지냈습니다. 중앙 관료에서 유배로 온 사람에게 사약이 내려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깊은 밤의 세월을 매일같이 18년 동안 견디고 또 버티고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심에 있다가 중심을 벗어난 변방의 삶을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언제나 어릴 때부터 중심이었던 사람이 중심부에서 밀려나서 바깥에서 사는 삶, 그 삶은 결코 쉬운 삶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대로 정약용의 인생은 '밤에 밖에서'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1. 밤에 밖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목자들이 나오는데, 이분들도 역시 깊은 밤을 지냈고 중심에서 밀려난 바깥 생활을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주의 사자가 찾아가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복음을 전합니다.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에도 깊은 밤과 같은 인생을 지내는 분이 있고, 주변에서 항상 끝자락에서 살며 벼랑 끝에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끼며 중심이 아닌 변방의 삶을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의 호적령을 내렸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황제가 로마 본토와 식민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적을 하라 하니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이런 권력자들의 자기 만족적인 명령에도 역사하시고, 그들의 말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외 없는 명령에 만삭의 몸을 이끌고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갑니다.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평하지 않습니다.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멀고 먼 길을 계속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생명의 떡집 베들레헴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그들을 환대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없었습니다. 배척하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쫓겨나고 또 쫓겨나서 결국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가 구유에 나셨습니다. 구유는 예수님의 겸손의 상징인 동시에 우리에게 생명의 떡과 참된 음료이신 당신의 피를 선물하시는 주님의 삶을 의미하는 상징입니다.

1-1. 목자들의 처지

그렇게 예수님께서 구유에 나셨던 그 밤,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 떼들을 돌보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 지역의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2,000년 전 예수님 시절 목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그 당시 목자들은 노예, 품꾼과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위랄 것도 없었습니다.

랍비들은 이 목자들을 가리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이 사람들을 부정한 직업군으로 분류했습니다. 만약에 이 사람들이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하더라도, 사회 부조리적인 문제를 본다 하더라도, 이들이 법정에서 하는 진술을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목자들은 회당 출입도 제한을 받았습니다. 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이 목자들은 이곳저곳을 양을 데리고 다니면서 목양을 해야 했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도 계층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바로 교육인데, 교육을 원천적으로 받을 수가 없으니 신분 상승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목자들입니다.

이들 목자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씀이 8절 말씀에 '밤에 밖에서'라는 말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서 밤이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밖이 아니라, 이들의 삶은 깊고 깊은 어둠, 밤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품꾼의 삶 아니었습니까? 젊을 때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늙고 병이 들면 이 일을 누구도 자신에게 맡겨 주지를 않습니다. 일거리가 떨어질까 봐,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 내 처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밤에 야영하며 양들을 돌봐야 되는 목자의 처지가 깊은 밤과 같은 인생입니다. 나아질 것도 없는 그런 인생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인생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일상 가운데 그들은 교육도 받지 못해서 그냥 이렇게 살다가 늑대에게 물리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목자들의 인생은 깊은 밤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류 사회에 편입될 수도 없었습니다. 주류라고 해 봐야 정치적 중심에 서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당 공동체 중심에서 자기 자녀들 학교도 보내고, 회당 커뮤니티에서 주류 사회의 사람들과 함께 말 섞고 그들과 함께 교제하며 살고 싶은데, 회당 출입도 제한적이고 더구나 그들의 말을 누구도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밤에 있었고 밖에 소외된 자들로 살고 있습니다.

1-2. 성실한 사명의 자리

그런데 이들에게 여전히 양들은 사명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날 밤, 밤에 밖에서 있던 목자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양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주인이 있는 양들입니다. 그들은 품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양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지키다'라는 동사 원형이 '필라소'(φυλάσσω)라는 단어를 쓰는데, 지금 여기 '지키더니'라는 말은 동사 원형을 쓰지 않고 분사 형태를 쓰고 있습니다. '필라손테스'(φυλάσσοντες)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에서 분사 형태는 지속적인 동작이 반복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말은 이분들이 성실하게 매일같이 그 자리에서 양 떼들을 지키고 돌봤다는 뜻입니다. 지키고 경계하고 돌보고, 그 일을 계속해서 매일같이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밤에 밖에서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가 해야 되는 일이니까 계속해서 그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그 밤도 역시 그랬습니다.

2. 주의 사자의 방문

그런데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춤에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이들에게 주의 사자가 찾아오셨습니다.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을 찾아가시는 장면들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는 장면도 봅니다. 그런데 거기에 나오는 기본적인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우리 주님이 찾아가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