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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다동길 24-12

제보자 : 익명의 맛칼럼니스트

‘ 조세톡톡 뉴스레터 9월호 맛집 제보 발췌’

우아한 만찬.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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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 가을 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이맘때 나는 나름의 고단했던 하루를 풀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면서 알게 된 을지로 부민옥. 블루리본과 서울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며, 5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배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빌딩 숲이 빼곡한 명동을 거닐다가 눈에 띈 붉은 벽돌의 2층짜리 음식점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다, 코끝을 스치는 소내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에 이끌려 발자국을 옮겼다.

분명히 시간은 18시 30분이었음에도 대포 한잔 걸친 듯한 벌건 아저씨들과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참이슬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기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부민옥, 수요미식회 육개장집으로 이름을 알린 거로 알고 있었지만 착석한 이후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은 다 양무침과 소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마치 자주 와본 척, 오랜만이라는 척 메뉴판을 눈으로 흘리고 앉자마자 바로 주문하였다.

"여기 양무침 하나랑 소주 한병 주세요." "소주는 어떤 걸로 드릴까?"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거로 주세요.!"

이 정도면 명동 대기업 직장인 같이 보였을 거라며 일행과 낄낄거리고, 이런저런 가십거리를 나누고 있던 중 양무침과 소주 밑반찬들이 깔렷다.

대한민국 중구 명동에서 3만 8천 원이라는 가격에 이정도 양이면 가성비라고 느껴졌을 정도로 양도 솔직히 많았다.

맛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침의 맛이었다. 적당한 산미와 참기름의 고소함, 간장의 달짝지근함 그리고 간을 한 듯 하지 않은 듯 슴슴한 간까지 딱 양 무침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맛이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맛 안에서 특별함이 느껴졌다. 소의 위(양)는 신선한 걸 사용했는지 매우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쫄깃하고 부드럽다라는 식감은 서로 대비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양 특유의 표면을 씹어내리면서 느껴지는 소내장의 저항감과 그 저항감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딱 느껴지는 부드러움, 그 식감 이후에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재빠르게 들어와 목젖을 '탁' 치고 내려가는 차갑고 달달한 소주까지 합쳐지니 나도 모르게 황홀경에 도취되어 있었다.

한잔 두잔 비워내는 술잔,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이제 내 몸은 탄수화물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수요미식회에 육개장으로 나왔던 집안만큼 칼칼한 육개장과 밥으로 몸이 원하던 탄수화물을 충족시켜주기로 했다.

얼핏 봤을 때는 빨간 국물이라 너무 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맵지 않았고 담백하였다.

양지와 사태로만 국물을 낸 것인지 국물이 생각보다 정말 담백하고, 대파를 푹 삶아서 파의 크기가 꽤 큼직함에도 불구하고 이물감 없이 입에서 다른 재료들과 조화를 이뤘다. 우리가 흔히 먹는 프랜차이즈 서울식 육개장과 달리 숙주와 토란대가 없고, 맵고 진한 국물의 육개장과는 다른 경상도식(소고기 뭇국의 결이지만)인 듯 경상도식이 아닌 듯, 마치 경북 예천에서 먹을 법한 육개장이었다.

먹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후식이였다.

서울살이를 끝내고 현재는 비록 타향살이를 하고 있어, 예전처럼 잘 가보지는 못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지만,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우는 계절이 오고 있는 작금의 시기에 마치 말이라도 된 것처럼 살찌우기 위해 조만간 방문하여, 그때처럼 참이슬 앞치마와 벌건 얼굴로 담배 한 대를 태우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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