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발트의 젊은 공자 카롤은 어머니를 잃은 직후 플로리아니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비탄에 잠겨 있었고 무엇도 그를 달랠 수 없었다. 로즈발트 공작 부인은 카롤에게 자애롭고 완벽한 어머니였다. 카롤이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는 최고의 돌봄을 아낌없이 베풀었고 완전히 헌신했다. 이 고귀한 여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라난 이 젊은이는, 평생동안 참된 열정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알지 못했다. 그것은 효심이었다.
모자간에 오고가는 사랑은 그들을 단 둘뿐인 존재로 만들었고, 보고 느끼는 방식을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절대적으로 만들었다. 공작부인은 물론 지성과 교양이 뛰어난 여성이었다. 어린 카롤에게 어머니의 말과 가르침은 전부처럼 느껴졌다. 카롤은 건강 문제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이런 고전 교육은 종종 현명한 어머니의 가르침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대체할 수 없는 도움을 준다. 고전 교육은 삶의 과학에 닿는 열쇠와 같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조언대로 가정교사와 책들을 치운 후, 로스발트 부인은 대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도덕 관념을 카롤에게 불어넣어 마음과 정신을 형성하는 데 헌신했고, 카롤은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배운 것 하나 없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뺨 때리기가 행해졌는데, 그것은 아이들에게 위대한 감성, 역사적 사건, 유명한 범죄, 혹은 본받거나 피해야 할 사례를 각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은 아니었다. 더 이상 우리는 아이들을 때리지 않지만,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우리들에게 배우는 것보다 훨씬 잔혹하게 경험을 통해 배운다.
그렇게 카롤 폰 로스발트는 세상과 인생을 일찍-아마도 너무 일찍-알게 되었으나, 실천이 아닌 이론을 통해서였다. 그의 영혼을 고양하겠다는 훌륭한 의도로, 어머니는 그에게 모범이 될 만한 탁월한 사람들만을 만나게 했다. 카롤은 바깥 세상에는 악인과 광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피하는 법만 배웠지, 이해하려는 법은 조금도 배우지 못했다.
물론 카롤은 불우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배웠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궁정의 문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에게 열려 있었다. 하지만, 카롤은 그들을 도우면서도 그들이 겪는 어려움의 근원을 경멸했고, 이런 병폐는 인류가 개선할 수 없다는 사고에 익숙해졌다. 무질서, 게으름, 무지, 판단력 부재, 오류와 비참의 치명적 근원들- 이런 것들을 가진 인간들은-당연하게도-고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고, 또 자유로워져야만 하며, 장애가 있거나 썩어들어가는 사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 안 되는 동정을 베푸는 것보다는 사람들 사이에 직접 참여하여 논의하고, 사랑하는 아이한테 하는 것처럼 꾸짖고 또 달래며, 약간의 진보를 이루기 위해 여러 번 같은 과오를 반복하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랬다. 카롤은 자선은 의무라고 배웠다. 물론 자선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한 해야 하는 일이 맞다. 하지만 자선은 거대한 인류 가족의 일원으로 가져야 할 사랑에서 나오는 많은 의무 중 하나일 뿐이다. 자선 외에 다른 의무도 많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동정하지 말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롤은 악을 미워하라는 격언을 열정적으로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죄인을 동정하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었고, 다시 말하지만 동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미래에 절망하지 않고 정의로우려면 사랑을 해야 하는데도. 사람은 스스로의 안락을 지나치게 좇아서는 안 되며, 순수하고 자기 만족적인 양심 속에서 잠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이 선한 청년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필품도 없이 살아간다는 가책 없이 사치를 하지는 않을 만큼은 너그러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고통에 대해 이런 자애를 베풀지도 않았다. 그는 인간의 타락이 그를 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나, 널리 퍼진 사회악에 맞서 싸우는 것이 도덕적으로 무결한 사람들의 의무라는 것을 깨달을 만큼 지적으로 명석하지 못했다.
한 편의 사람들에게서, 카롤은 도덕적 귀족주의, 지적 차별성, 성품의 순수함, 그리고 본능의 고귀함을 보았고, ‘그들과 함께 하자’라고 생각했다. 다른 편의 사람들로부터 그는 야만성과 천박함, 광기와 타락을 보았고,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가능하다면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 그는 ‘길 잃은 사람들이군요! 빵과 옷가지를 건네주되, 접촉해서 영혼을 더럽히지는 맙시다. 그들은 타락한 사람들이니 그들의 영혼은 신에게 맡겨둡시다’라고 말하도록 배웠다.
이런 자기 보호 습관은 결국은 이기심으로 변질되는 법이라, 공작 부인의 마음 깊은 곳에도 이와 같은 냉담함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보다도 자기 아들에게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카롤 또래의 친구들이 조금만 어리석거나 경솔하다고 느껴도 교묘하게 카롤을 그 사이에서 분리시켰다. 그녀는 아들이 아들 같지 않은 사람과 만나는 것을 두려웠다. 그러나 이런 접촉을 통해서야말로 우리는 어른이 되고, 강해지며, 처음부터 이끌려 방황하는 사람이 아닌 유혹을 물리치고 좋은 선례를 만들며 영향력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편협하거나 광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공작부인은 융통성 없이 경건한 편이었다. 부인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는데, 교회의 횡포를 알았지만, 교회의 큰 일을 위해 인내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을 알지 못했다. ‘교황님도 실수할 수 있지.’ 그녀는 말했다. ‘그분도 사람일 뿐이니까. 하지만 교황청은 실패할 리가 없어. 하느님의 기관이니까’ 그 때부터, 진보 사상은 카롤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고, 일찍부터 그런 사상에 회의를 품고 지상에서는 인간 구원을 희망하지 못하도록 배웠다. 어머니만큼 종교 의식에 신실하지는 않았지만-왜냐하면 어쨌든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속박 정도는 바로 깨버리니까-카롤은 선한 사람들은 구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의지는 바꿀 수 없는 교리 안에 머물렀다. 그 교리는 선택받은 소수에 만족했고, 대다수가 영원한 악의 지옥이라는 곳에 떨어지는 데 체념하는 교리였으며, 귀족들의 이념과 부유한 사람들의 특권에 완벽하게 맞춰진 우울한 믿음이었다. 지상과 마찬가지로 소수는 낙원에, 다수는 지옥에 있는 것이다. 면책받은 소수에게는 영광과 행복과 보상이, 거의 모두에게는 수치와 전락과 형벌이.
천성이 좋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도 이런 오류에 빠지면 영원한 슬픔의 벌을 받는 것이다. 분별 없거나 어리석은 자들만이 이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로즈발트 공작부인은 이런 카톨릭식 숙명주의에 시달렸고 그 무서운 말씀은 그녀가 흔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엄숙하고 도덕주의적인 습관을 갖게 됐고, 그 아들도 점차적으로-형태가 아니라면 본질적으로-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카롤은 어린 시절의 즐거움도, 충동도, 맹목적인 신뢰도 알지 못했다. 사실 카롤에게는 어린 시절 자체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멜랑콜리로 변해 버렸고, 사랑을 할 나이에조차, 그의 상상은 어둡고 슬픈 이야기들로 가득 찼다.
카롤의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그의 천성은 사랑스러웠다. 온화하고, 예민하며, 모든 일에 우아했으며, 15세가 되자 그는 청소년의 모든 우아함과 나이 든 이의 품위를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카롤의 신체는 마음처럼 섬세했다. 그러나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오히려 매력적인 미를 간직하게 됐는데, 말하자면 나이도 성별도 없는 것 같은 독특한 안색을 갖게 된 것이다. 술을 마시고, 사냥하고, 전쟁하는 것밖에 몰랐던 옛 영웅들의 후손다운 남자답고 대담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장밋빛 볼을 한 아기천사같은 여성스러운 부드러움도 아니었다. 카롤의 미는 중세 시인들이 교회를 꾸미기 위해 사용했던 아름다운 피조물과도 같았다. 키가 크고 우수어린 여성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올림포스의 젊은 신처럼 순수하고 호리호리한 형태, 그리고 그 위에 더해 부드러움과 엄숙함, 정숙함과 열정을 동시에 갖춘 표정을 가진 천사.
그것이 그의 본질이었다. 그의 생각보다 순수하고 고귀한 것은 없었다. 그의 애정처럼 완고하고, 독점적이며, 세심하게 헌신적인 것은 없었다. 누군가 인류의 존재를 망각하고, 인류가 단 하나의 존재로 압축되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믿었다면, 그 세계의 폐허에서 숭배를 받는 것은 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그의 어머니. 그는 어머니의 순수하고 빛나는 반사체였다. 그리고 신이 있었는데, 그의 영적인 본성에 맞게 그는 신에 대해 이상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상상 속에서 짜맞춰 만들어낸 여성이 있었는데, 그는 훗날 그녀를 알지도 못한 채 사랑하게 된다.
그 외의 존재들은 카롤에게 그저 일종의 귀찮은 꿈으로 존재했으며 그는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으로 그들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그는 언제나 몽상 속에 빠져 있었고, 현실 감각이 없었다. 어린 시절, 그는 다치지 않고 뾰족한 물체를 만지는 법이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살아 있는 모순과 괴롭게 충돌하지 않는 법이 없었다.
그가 언제까지나 적대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보거나 듣지 않는 습관을 의도적으로 내재화해서 그의 개인적 감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시점에서는,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유령처럼 되어버렸고, 그가 매력적이고 예의바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진심은 냉담한 경멸이나 지대한 혐오일 때조차 사람들은 그가 예의바르고 선하다고 착각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공자가 친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정말로 친구가 있었다. 카롤을 귀부인의 값진 아들로 여겼던 어머니의 친구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열렬히 사랑하고 또 그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또래 친구들도 있었다. 카롤 자신도 자신은 친구들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진심이 아니라 그의 상상에 가까웠다. 그는 우정에 대해 높은 이상이 있어서, 처음으로 환상을 품던 나이에는 그는 곧잘 자신과 친구들은-양육 방식도 따르는 원칙도 같았던-절대 마음이 바뀌지도 않고 심각한 불화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라 쉽게 믿었다.
물론 이 시기는 지나갔고, 24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즈음에는, 그는 그 친구들 중 대다수를 혐오하게 되었다. 단 한 명만이 진심으로 카롤을 따랐다. 그는 젊은 이탈리아인이었고, 자기 나이보다 좀 더 성숙했으며, 고귀한 외모와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열정적이었다. 카롤과는 거의 모든 점이 매우 달랐지만, 그는 카롤과 최소한의 접점을 지니고 있었다: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기사도적 충성에 대한 헌신. 이 친구가 카롤을 어머니의 무덤으로부터 끌어내어 활력을 주는 이탈리아의 하늘 아래로 데려가, 처음으로 플로리아니 가족을 만나게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