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장 1-2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오늘부터 시작하여 열일곱 번에 걸쳐 레위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니 이러한 방식으로 수요사경회를 진행한 지 어느덧 만 5년이 지나고 6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열 과목을 다루었는데, 그중 다섯 과목은 정교인 양육 과정의 필수 과목으로, 나머지 다섯 과목은 선택 과목으로 진행했습니다.
처음에 우리 교회가 양육 과정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5년 주기로 필수 과정을 한 번씩 더 듣게 하려는 취지였습니다. 처음에 정한 필수 과정 다섯 과목은 구약, 신약, 기도학교, 예배학교, 교리학교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성도들의 필요와 교회 상황,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제 한 바퀴 돌아서 구약을 다시 공부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미 다룬 내용들은 유튜브에 모두 올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교육 차원에서 구약과 신약을 다시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나 온라인으로 공부하시는 분들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열정이 있으신 분들인데, 그런 분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함께 연구하고 배우는 편이 훨씬 유익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레위기를 준비했습니다.
왜 레위기인가 하고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왜 하필 레위기인가? 창세기와 출애굽기까지는 그나마 읽겠는데, 레위기에 가면 복잡하고 힘든 규정이 많은데 왜 이 아까운 시간에 지루한 레위기를 다루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오늘 우리 시대가 예배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자칫하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예배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세류에 떠맡긴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배를 말씀하신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엄격한 규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고 행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레위기 말씀을 통해 예배의 깊고 숭고한 의미를 알려주셨는데, 이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예배 회복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구약적 의미에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배우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둘째, 레위기가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는 것을 함께 느껴보고 싶습니다. 지난 학기에 계시록을 공부했는데, 지금 계시록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사실 누가 이야기하면 '아, 그랬는가 보다' 할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에 남은 것이 있다면 '무서운 책이 아니구나, 계시록은 은혜가 넘치는 책이었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이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가슴에 남아도 성공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이번 레위기도 졸리는 책이 아니고, 어려운 책이 아니고, 읽다가 짜증 나는 책이 아니라 재미있고 즐겁고 깊은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것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있다는 것을 한 학기 동안 경험하셨으면 합니다.
레위기가 모세오경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19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성경 읽기 수준이 조금 높아지면 성경을 읽을 때 숫자나 날짜, 대명사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지금 19장 1절에서 중요한 말씀은 '삼 개월'이라는 표현입니다. 시내 광야에 이르렀는데, 언제부터 삼 개월입니까? 이집트에서 출애굽한 지 삼 개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실 때 일차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원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지만, 가나안은 멀었습니다. 가나안까지 가기 전에 일차 목적지가 있었는데, 그곳이 시내산이었습니다. 시내산은 시내 광야에 있었고, 삼 개월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서 도착한 곳이 시내 광야, 시내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을까요? 무엇을 주시려고 그러셨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구약 개론할 때 다 다루었는데, 첫째는 성막이요, 둘째는 율법입니다. 성막과 율법을 주시려고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주시는 것은 말씀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라" 하시면 만드는 것은 누가 해야 합니까? 백성들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공부할 때도 살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 방주 만드는 것은 노아의 몫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성막을 이렇게 만들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그것을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