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장 3-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있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야고보서를 여섯 번에 걸쳐서 공부를 마쳤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시작해서 여덟 번에 걸쳐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사실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제자 아닙니까? 예수님도 그분을 잘 아시지만, 베드로도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아마 자부할 것입니다.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는데, 사실 마가라는 이름을 빌어서 마가복음이라고 썼지만, 그 마가복음은 베드로 복음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마가라는 사람이 복음서 형태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과 모든 상황을 보면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로서 첫 번째 복음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베드로전후서는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흩어진 교회,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좋을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시대도 종말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그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지금 우리나 동일합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전후서는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만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우리에게 종말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들려주는 아주 유용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여덟 번에 걸쳐서 공부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함께 배우면 좋겠습니다.
먼저 1장의 주제를 "산 소망을 가진 거룩한 백성"이라고 잡았는데, 거룩이라는 말의 신약적인 의미를 조금 이따가 설명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원래 베드로의 모습과는 조금 낯선 모습입니다. 굉장히 성숙하고 믿음이 깊어진 모습을 보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는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여기 한번 쳐봤고 저기 쳐봤고, 예수님께 혼나기도 하고, 굉장히 다혈질이구나 한 성격이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베드로전후서를 읽어보면 그런 베드로는 다 사라지고 굉장히 깊이가 있고 성숙해진 모습, 신앙에 철이 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까? 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자기를 소개하는 것을 잘 보셔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사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그런데 야고보서를 공부했으니까 기억이 아마 나실 것입니다. 야고보는 자기를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인데 자기를 가리켜 종이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자신을 사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도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요? 아마 어떤 사람들은 종이 훨씬 더 자기를 낮추는 표현이 아닌가, 사도라고 하니 베드로가 조금 아직 뻣뻣하고 교만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자기를 사도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제일 마지막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지금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가서, 가라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고 세례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것이 사도입니다. 그래서 사도의 헬라어를 보면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은 자. 마지막 우리 주님의 명령이 "너희는 가서"였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고 세례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이 사명을 지금까지 잘 감당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이것을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는 표현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헤어질 때 승천하실 때 주님께서 주셨던 그 유언과 같은 말씀, 사도가 되라, 보내심을 받은 자가 되라. 보내심을 받은 자가 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보낸 자의 의도대로 살아야 합니다. 보낸 자의 의도가 무엇이었습니까? 제자 삼고 세례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 그것이 사도입니다. 그 사도의 사명을 베드로는 지금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을 여기 이 짧은 1절에서 자기 정체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신앙생활하면서 아주 중요한 것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말하는 분도 있고, 후천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얻어진 것도 있습니다. 부모라는 이름도 있고, 직업인의 이름도 있고, 여러 이름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에서, 교회와 나와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자의 이름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사명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를 항상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그것을 점검하지 않으면 그냥 원하는 대로 살게 됩니다. 자연인의 이름대로 그냥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이름대로 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라는 이름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영광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자녀들이 잘 나갈 때, 자녀들이 잘할 때, 자녀들이 좋은 학교 가고 좋은 직장 취직하고 돈 잘 벌고 효도하고, 그럴 때는 부모라는 이름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또 정말 좋은 직장에 내가 몸담고 있을 때는 그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시고 일을 주시고 사명 주신 그 사명자의 이름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것이 희미해집니다. 그런 이름으로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런 이름으로 사는 것이 굉장히 영광스럽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사도의 이름을 첫 번째 편지 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자랑스럽게 쓰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면 무엇이라고 쓰시겠습니까? 그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는 말씀을 그냥 읽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지금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 나타난 교회의 정체성을 살펴봅시다.
첫째, 흩어진,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입니다. 당연히 그 당시에는 박해 때문에 흩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의 박해, 그리고 로마의 박해로 교회를 핍박하니까 그 박해 때문에 흩어졌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나라가 없고 로마 식민지 하에서 본토에 살기 어려우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흩어졌다는 것이 사실은 교회의 정체성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여서도 교회지만 흩어져야 또 다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