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오늘부터 고린도후서 공부를 12주간 함께 나눕니다. 고린도전서를 2년 전에 공부했고, 이제 2년이 지나서 다시 고린도후서를 시작합니다. 이어서 할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연이어 하면 다소 지루할 것 같아서 2년 정도 다른 책을 공부하다가 이제 고린도후서를 공부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고린도 교회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다소 어폐가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사랑하지 않은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개척한 교회를 다 사랑했지 않겠습니까? 어떨 때는 빌립보 교회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하고, 또 어떨 때는 에베소 교회를 너무 가고 싶어했다고 하고, 또 지금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했다고 하면 그럼 바울이 진짜 사랑한 교회가 어디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숫자적으로 따져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제일 사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일 속을 많이 썩였기 때문입니다. 사연이 많으면 그 사연이 계속 쌓이다 보면 사랑도 깊어지는 법입니다.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면 나중에 얼마나 절절합니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날 때 이 절절함을 감출 수가 없는 것처럼, 고린도 교회와 바울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굉장히 많이 싸우고 굉장히 많이 갈등하고 속을 너무 많이 썩였습니다.
그래서 이 고린도전후서를 읽으실 때는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자식이 속을 썩여도 버릴 수 없잖아요. 내쫓을 수도 없고, 그런데 또 사랑스럽고, 또 자주 잊어버리고 그런 존재인 것처럼 이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는 꼭 그런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개척했는데, 아시다시피 2차 선교여행 때 바울 본인이 원했던 목적지는 에베소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막으시고 못 가게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유럽으로 갑니다. 정처 없이 갑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에, 현대의 그리스 지역, 그리스의 북쪽 지역을 우리는 마게도냐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마게도냐에 바울이 2차 선교 때 갔던 세 도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빌립보, 베뢰아. 그 북쪽 마게도냐 지역을 다 개척하고 돌고 나서 남쪽으로 갑니다. 남쪽이 그리스 남쪽인데 살기 좋고 경치도 좋은 곳입니다. 그쪽 지역을 아가야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아가야 지역에서 바울이 두 도시를 갔습니다. 첫 번째가 우리가 정말 잘 아는 아테네입니다. 성경은 아테네를 아덴이라 불렀습니다. 아테네에 갔는데, 아테네에서 바울의 열매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 아닙니까? 바울이 거기서 철학자들과 논쟁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교과서에서 봤던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와 논쟁을 굉장히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잘하니까 이 말쟁이를 데려다가 광장에 세워서 한번 이야기해보자 합니다. 바울이 그 사람들과 함께 가서 아레오바고 광장에 서서 설교를 합니다. 그런데 이 설교가 굉장히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설교였습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교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극소수의 열매만 맺었습니다. 바울이 그것이 굉장히 실망이 컸고 참담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고린도로 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를 쓰는데 그때 이야기합니다. "내가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만 복음을 전하겠다.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예수 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제는 인간의 철학과 인간의 생각으로 복음을 혼동시키지 않겠다는 결단을 합니다.
그것이 고린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오래 머뭅니다. 바울과 같이 갔던 2차 선교의 동역자 실라, 그리고 바울이 2차 선교 때 픽했던 디모데, 그리고 바울의 주치의 누가, 바울의 평신도 동역자 두 사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납니다. 그래서 이분들과 함께 그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뜨겁게 복음을 전합니다. 원래 사람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 좋잖아요. 기억이 오래 남고, 그래서 바울에게는 고린도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몇 번의 편지를 보냈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두 번 아닙니까?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네 번 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굉장히 아끼고 사랑했고 속을 많이 썩였다는 것입니다.
증거를 한번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는 과거형입니다. 고린도전서 이전에 이미 쓴 편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편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발견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 손에 없습니다.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어떤 고고학자가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를 찾는다면 고린도전전서가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이전의 편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이전에 편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1절을 보니까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린도 교회 첫 번째 문제가 분쟁이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싸웠습니다. 결혼 문제도 있었고, 우상의 제물 문제도 있었고, 성령의 은사 문제도 있었고, 송사 문제도 있었고, 등등 그런 문제들이 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해결책을 써서 보낸 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두 번째 편지입니다.
그다음 고린도후서 2장 4절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그랬습니다. 이 "썼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러면 고린도후서 이전에 또 편지가 하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고린도후서가 아니고요. 그 전에 편지가 또 있었습니다.
이것은 왜 썼느냐 하면, 바울의 사도권을 가지고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를 어지럽히니까 바울이 편지를 써줬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누가 가지고 갔을까요? 바울의 심부름을 잘한 사람이 있습니다. 디도라는 사람이 그 편지를 가지고 갔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가서 해결책을 들고 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오지 않으니까 바울이 걱정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