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장 7-8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이번 학기에는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갈라디아서를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지난 학기에는 룻기와 에스더를 공부했는데, 구약을 한 번 다루었으면 신약도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갈라디아서를 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약성경 27권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권의 서신서를 기록했는데, 그중에 우리가 살펴본 것이 꽤 됩니다. 이미 옥중서신 4권을 공부했고, 고린도전서와 로마서도 공부했습니다. 이제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 서신서 중에 초기 저작입니다. 2차 선교여행 때 고린도에서 기록한 서신서가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첫 과를 공부할 때는 2차 선교여행 이야기를 조금 하고,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된 배경을 한번 나눠보려고 합니다. 특히 데살로니가전후서와 갈라디아서는 성도들의 고난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고난은 옛날처럼 끌려가서 고문당하는 식의 고난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형태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메시지와 은혜의 메시지가 이번 학기에 공부할 내용입니다.
신약 공부를 예전에 했는데 기억이 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설교 때도 말씀드리고, 금요기도회 때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는데,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입체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누구와 갔다 왔습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갔다 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안디옥 교회입니다. 시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여 1차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은혜 가운데 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는 중에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마가(요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마가(요한) 문제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에서 첨예한 이슈가 되었는데, 마가(요한)이 1차 선교여행 때 한 번 도망간 전적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한 번 용서해주고 2차 때 다시 데리고 가자는 생각이었고, 바울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한 번 도망간 사람은 두 번 도망간다. 안 된다. 저 사람 내가 잘 아는데 절대 안 된다." 이래서 서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39-40절을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서로 심하게 다투고 피차 갈라섰다고 했습니다. 사실 성경에서 이렇게 점잖게 기록해 두어서 그렇지, 얼마나 심하게 다투었으면 성경이 이렇게까지 기록해 두었겠습니까. 어쨌든 마가(요한) 때문에 두 사람은 결별합니다. 바나바는 마가(요한)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떠나고, 바울은 실라를 택하여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렌즈는 바울과 실라를 따라갑니다. 2차 선교여행의 시작이 어떻습니까? 깔끔합니까, 찝찝합니까? 찝찝하지요. 불편합니다. 어쨌든 분쟁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니까 불편합니다. 이 불편한 감정을 안고 시작하면 중간에 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마음이 듭니까? 자꾸 원점이 생각납니다. 중간에 일이 안 되거나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이 생기면,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런가? 그때 그 사건 때문에 그런가?" 하는 마음이 자꾸 생깁니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갈등 요소를 안고 어쨌든 2차 선교여행을 출발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2차 선교여행을 떠나는데, 가다가 동역자 한 사람을 픽업합니다. 누굽니까? 디모데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절을 보면,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 명이 되었습니다. 2차 선교여행을 출발해서 같이 다닌 사람이 바울, 실라, 디모데, 이렇게 세 명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원래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그 목적지는 그 당시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였던 에베소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6장 6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시아'라고 표현된 것은 에베소를 말합니다. 성령이 바울이 정한 목적지로 못 가게 합니다.
이게 되는 게 없습니다. 2차 선교여행 출발부터 서로 싸웠고, 피차 갈라섰고, 목적지는 에베소로 가고 싶은데 성령이 못 가게 합니다. 자꾸 뭔가 삐걱거립니다. 뭔가 자꾸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바울이라는 사람이 한 번 못 가게 한다고 포기할 사람입니까? 이 사람이 집요하고 인간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7절을 보시면,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자꾸 성령께서 막습니다. 결국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9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런 환상을 보게 됩니다.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사이에는 바다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에게해라는 바다입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인데, 이 바다를 건너와서 유럽으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결국 순종하게 됩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세 사람이 아시아를 포기하고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이제부터는 정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원래 계획한 도시는 에베소였는데, 성령께서 오라고 했으니까 그냥 가는 것입니다. 유럽으로 갔습니다. 마게도냐는 도시가 아니고 지역 이름입니다. 유럽의 북쪽에 있는 한 땅덩어리를 마게도냐라고 불렀는데, 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거기에서 첫 번째 만나는 성이 어디였습니까? 빌립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