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하던 직장에서는 제일 막내였다. 상사는 내 나이의 두배도 넘는, 아주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었다. 문서를 만들어 드리면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다섯배정도 키워달라고 하시던... 글씨가 커지면 왠지 모르게 속이 울렁거리는 나에게는 너무 힘든 지시였다. 반대로 지금은 대표님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닌거 같은데 주위 사람들이 어려서 그런지 무슨 말을 하다가도, 요즘 사람들은 이런 표현 안쓰나? 하면서 소심해진다. ‘요즘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이 많다는 증거일까. 다른건 몰라도 나이 많다고 어린 사람들을 가르치지는 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사실 나는 이미 어마무시한 잔소리쟁이다.
요즘 잔소리 대상은 아주 성실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해내는 훌륭한 직원이다. 이 직원이 틈틈히 나의 잔소리를 듣게 된 이유는, 일을 못해서는 절대 아니고(일은 나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잘 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보면 생각해본 적이 없다거나 모든 걸 다 좋아한다거나... 다양한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은 비슷하다. 작은 것들로 자주 기뻐해야한다는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온 나는 이런 사람을 보면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된다.
이 직원이 작은 것들로 순간 순간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맛있는 젤리를 먹으면 나눠주고 싶고, 넓은 창에 비치는 노을은 보여주고 싶고, 좋은 음악을 만나면 들려주고 싶고,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면 초대하고 싶다. 나는 이런 작은 것들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겠지만,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좋은 것들이 이 직원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다. 그 마음이 앞서 늘 말이 길어지고, 우리의 대화는 늘 이 대사로 끝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남은 잔소리는 내일!”
(쓰다보니 우리 직원 너무 불쌍하고 미안하다. 그렇지만... 잔소리 안할 자신은 없어. 미안...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쓰면서도 정말 별로다... 전형적인 꼰대) 잔소리쟁이는 이만 들어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