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본문: 창세기 1장 1-2절

1. 근원을 묻는 인간

철학의 역사를 다룬 철학사 책을 펼치면 제일 첫머리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의 고대 자연 철학자들 이야기입니다. 그들 중에 탈레스라는 사람은 우주의 근원 아르케(ἀρχή)를 물이라고 표현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표현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의 근원을 불이라고 표현했고, 그 이후에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공기에 흙을 추가해서 사원소설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한 우리 시대의 눈으로 보면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들의 주장이지만, 기원전 6세기와 5세기를 살았던 그들이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탐구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그들의 주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이런 질문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커다란 문제 없이 그냥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커다란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우리가 인생의 극복할 수 없는 위기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그제서야 우리는 원인과 본질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운전을 할 때 차가 아무런 문제 없이 그냥 굴러가면 차의 원리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다가,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일이 벌어지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런 질문을 가지며 차의 원리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전 세계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부딪쳐서 큰 어려움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세계 석학부터 시작해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까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인류 공동의 문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세기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세상 가운데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창세기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창세기는 하나님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매뉴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매뉴얼을 펼쳐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원리로,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원리를 다시 찾아보고 근본부터 돌이켜서 살펴보면 원인을 발견하고 처방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본질과 근원과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아 알기를 원합니다.

창세기는 성경 66권 가운데 제일 첫머리에 있는 책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표현하신 하나님 사랑의 대서사시라고 한다면, 그 사랑의 편지 첫머리를 어떤 말로 쓰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사랑의 연애 편지를 써 보신 분들은 다 기억을 하시겠지만 첫마디를 뭘로 쓸까 밤새도록 고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아마 창세기 1장 1절을 어떤 말로 쓸까 굉장히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고민하시다가 드디어 첫마디를 기록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떤 느낌으로 읽고 받아들이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별 생각 없이 그냥 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펼치기만 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첫 번째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 하시면서 성경을 통독하신 분들은 항상 창세기부터 시작하는데, 창세기 1장 1절을 펼 때마다 이 구절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우리에게 그다지 큰 감동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대단히 중요한 선포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이 말씀의 주어가 누구로 되어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의 주어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 온 우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다 일컫는 말입니다. 물론 이 속에는 나와 같은 우리 인간 존재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 끝까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 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이 세상의 물질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인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경 첫 장 첫 절을 기록하시면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과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세계 창조와 운행의 원리는 하나님이 주인 되심의 원리가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온 우주의 주권자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살아가야 우리 인생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2-1. 주인 됨을 부정하는 세상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온 우주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데 어떻게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서 빚어진 전쟁입니다.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더 많은 땅과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남의 나라를 침략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우습게 여깁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데 어떻게 이 땅의 빈부격차가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크나큰 차이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돈이 많은 부자들이 어찌하여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하여 나눔을 실천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내가 이 물질의 주인이고 내가 온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임을 인정한다면 세계의 자연 파괴 현상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전대미문의 재앙이 일어난 것도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자연의 영역이 있고 인간의 영역이 따로 있는데, 인간이 탐욕을 부리며 그로 인해서 자연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을 무분별하게 훼손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지구의 남은 땅을 남겨놓지 않고 끊임없이 개발을 하면서 자연을 무분별하게 독식했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자기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인정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2-2. 주인 됨을 인정할 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면 우리에게 얻는 바가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 인생의 주로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9절을 보시겠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사도 바울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밥 먹듯이 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바울이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그에게 될 수 있으면 어떤 올가미라도 뒤집어 씌워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나는 매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은 매이지 아니하였다고. 바울은 사람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겁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유인이다. 그런데 사실 그 속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자유롭게 살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엔가 매여 있습니다. 물질에 매여서 돈을 쫓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권력에 매여서 권력을 쫓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간관계에 매여서 사람을 따르며 그 사람을 자기 인생의 보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시간을 다스리지 못하고 항상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올가미와 사슬에 자기의 목이 걸려서 매여서 살고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 한 분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돈만 열심히 쫓아가야 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돈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어떤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서 그 조직을 열심히 섬기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어떤 누군가 사람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인생이 아닙니까? 사도 바울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우리는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