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7월, 동인도 회사 소속의 한 상선이 우리나라 서해안 고대도에 닿았습니다. 그 상선은 통상 교역을 요청했습니다. 자신들이 가져온 물건을 조선 땅에 팔기를 원했고, 조선에서도 물건을 내주면 사서 가겠다고 교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기다린 끝에 조선 왕실에서는 교역 불가 방침을 전달했습니다.
그 한 달 동안 그 상선에 타고 있었던 독일인 선교사 귀츨라프가 있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고대도에 내려 조선인 선비의 도움을 받아 주기도문을 번역했습니다. 이 주기도문을 번역하여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늘에 계신 신께 기도드릴 때는 이렇게 기도하시면 됩니다"라고 기도문을 나누어 주고 떠났습니다. 이와 함께 감자를 심는 법도, 감자를 잘 키우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담글 수 있는지 포도주 담그는 법도 가르쳐 주고 떠났습니다. 이것이 기록에 남아 있는 조선에 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로부터 34년이 지났습니다. 1866년 8월에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옵니다. 그 당시 조선은 적극적인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대동강에 아예 정박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교전이 벌어졌고 배에는 불이 붙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대동강에 몸을 던졌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 모래톱에서 한 칼에 목 베임을 당하고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죽어가면서 토마스 선교사는 가지고 왔던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로부터 19년이 지나 1885년 부활주일에 드디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항에 발을 디뎠습니다. 개신교 선교의 공식적인 첫 번째 선교사입니다. 1885년 부활주일 이래로 134년이 지나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되기 전에 이미 복음의 시작을 알린 선교사들이 있었으니 귀츨라프 선교사와 토마스 선교사입니다.
한 나라에 복음이 전해지는 데도 복음의 시작 전에 하나님께서는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순교의 피까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처음 복음을 전하실 때 얼마나 오래 기다리시고 얼마나 많이 준비하셨겠습니까? 그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장이 오늘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이 기록은 복음의 시작을 우리에게 강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전파합니다.
부디 새해 첫 시작을 복음의 시작으로 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이제 올 한 해가 복음으로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해가 끝날 때쯤 되면 "아, 정말 올 한 해는 복음으로 잘 살았구나. 올 한 해 우리 인생이 복음으로 꽉 찬 인생을 살았구나"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복음으로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가복음의 별명은 '베드로 복음서'입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는 것을 마가 요한이 받아 적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나름대로 편집해서 복음서를 기록하고 전파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성격 급한 베드로가 자주 쓰던 "곧", "즉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이나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과감하게 생략했습니다. 바로 본론부터 들어갑니다. 원래 평소 베드로의 성격 그대로입니다. 네 권의 복음서 중에 가장 짧은 복음서이며, 가장 먼저 기록된 첫 번째 복음서입니다.
이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마가복음은 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누군가가 그의 길을 준비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실제로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역은 예수님 전에 백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진정한 목회자다운 목회자를 보지 못한 그 당시, 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실망하고 있었던 백성들의 마음은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세례 요한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치 농사짓기 전에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비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것입니다.
이 세례 요한의 사역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는 내용이 3절 말씀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 1:3)
세례 요한의 사역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외칩니다. 무엇을 외칩니까? 자신의 업적,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뒤에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외칩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다, 이분이 오시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을 외쳤습니다.
여기 "소리"라는 표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소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의사 전달 아닙니까? 소리는 분명한 자기 의사 전달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소리의 사명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의사 전달을 하고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 소리는 절대로 소리다운 소리가 되지 못합니다. 동굴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맴돌아 웅웅거리면 의사 전달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의사 전달을 하고 소리가 없어져 버려야, 사라져 버려야 그 의사 전달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리라고 하는 것은 의사 전달을 하고 나는 없어지겠다는 것, 이것이 세례 요한 자신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은 쉬우나 사라지는 것이 그렇게 쉽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이 세례 요한처럼 유명해졌다면 절대로 사라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4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 1:4-5)
사람이 없는 곳에서 외쳤습니다. 한두 명 있는 데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소문이 났습니다. 한두 사람, 수십 명이 몰려들더니 수백 명, 수천 명이 몰려듭니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말씀다운 말씀을 듣지 못했던 그 시대에 정말 하나님 나라에 살아 있는 복음을 전하는 세례 요한에게 사람들이 은혜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몰려들었다는 것입니다. 몰려들어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에 보내신 하나님의 귀한 종입니다." 이런 칭찬을 매일같이 수백 명, 수천 명에게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라지는 것이 과연 쉬울까요? 소리처럼 연기처럼 없어지는 것이 과연 쉽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