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승준의 뉴스 저격] "덮어놓고 조국 수호, 진영논리에 갇힌 진보… 뻔한 사기극도 못 보더라"

원문보기 문화>문화일반 | 국제>국제일반 | 정치>정치일반 2019-10-31 권승준 기자

[보수정부 비판했던 진보논객, 진보의 위선을 꼬집었다… 서민 단국대 교수 인터뷰] "진실보다 내편만 따지는 논리, 정상적 판단력을 마비시켰다 박사모는 거리에 나와 자기주장… 문빠는 여기저기 댓글, 여론몰이 윤지오는 허술한 사기꾼일 뿐, 많은 사람 놀아나는 것 보고 놀라 '나라도 나서야겠다' 생각에 책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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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오 사기극과 그 공범들." 일주일 전인 24일 이런 제목의 책 한 권이 서점에 깔렸다. 지난 3월 소위 '장자연 리스트'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고 주장하며 주목받았던 윤지오씨를 겨냥한 책이었다. 윤씨는 자신이 고(故) 장자연씨의 생전 동료였기 때문에 사건의 진실을 잘 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밝히지 않았고, 앞뒤가 안 맞는 얘기도 많아서 진위 논란이 뜨거웠다. 게다가 윤씨는 신변 위협을 받는다며 후원금 1억4000만원을 모은 뒤 캐나다로 출국해 버렸다. 그 행태에 분노한 이들이 윤씨를 사기범으로 고소했다. 이런 판국이니 윤씨를 비판하는 책의 출간이 신기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책의 저자가 신기했다. 시사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단국대 의대 서민(52) 교수였다. 필봉(筆鋒)이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겨냥했기에 편 가르기 좋아하는 이들은 서 교수를 '진보 논객'으로 분류했다. 그 진보 논객이 윤씨가 사기꾼이라고 주장하고, 그걸 입증하는 책까지 낸 것이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필두로 진보 진영 다수는 한때 윤씨를 영웅처럼 떠받들었다. 서 교수가 최근 몇 달간 쓴 칼럼 제목도 심상치 않았다. "조국(전 법무부 장관)이 두려워지는 이유" "그래, 나 친일파다" "손혜원 의원이 한국당 소속이었다면" 등등. 진보 진영의 위선에 실망한 논객의 전향일까. 책이 나온 다음 날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서 교수에게 물었다.

―윤씨가 왜 사기꾼인지에 대한 꼼꼼한 논증이었다. 왜 이런 책을 낸 건가.

"아무도 안 낼 것 같아서(웃음). 내가 보기에 윤씨는 정말 '투명한' 사기꾼인데, 대다수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 이야길 제대로 못 하거나 침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라도 나서야겠단 생각에 직접 이 책 기획서랑 시놉시스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찾았다. 그런데 번번이 퇴짜를 놓더라. 이래 봬도 나름 출판업계에선 베스트셀러 저자로 통하는 사람인데도 그러더라. 한 출판사가 '용감하게' 나서 준 덕분에 겨우 책이 나왔다."

―예전부터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관심이 있었나.

"전혀 아니다. 막연히 장자연씨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조선일보가 가해자라고 단정한 사람 중 하나였지. 처음에는 윤씨를 '큰 용기를 낸 대단한 젊은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윤씨의 조언자였던 김수민 작가가 그의 실체를 폭로한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글만 읽어도 윤씨가 사기꾼이란 걸 알 수 있다. 그 뒤로 본격적으로 윤씨에 관한 여러 기사와 자료를 찾아 읽어보면서 공부해보니 이건 뭐(웃음). 이렇게나 허술한 사기꾼에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놀아날 수 있나 싶더라."

―왜 그런 사기극이 통했다고 보는가.

"한마디로 진영 논리 때문이다. 진실이 아니라 우리 편이 중요하다는 논리가 사고를 마비시키는 거다. 윤씨가 낸 책 '13번째 증언'은 '13번째 구라(거짓말)'일 뿐이다. 그 '구라'를 무턱대고 믿는 건 윤지오는 우리 편이고 그 적수는 '때려잡아야 할 조선일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논리 안에서 우리 편은 틀릴 수가 없다. 나도 조선일보 논조에 동의하지 않는 게 많은 사람이지만, 이 사건에 관해서는 조선일보가 피해자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곧바로 적폐로 몰린다. 진영 논리 때문에 점점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힘들어지고 있다."

―최근 현 정권과 그 지지자들의 진영 논리를 비판하는 칼럼을 많이 쓰고 있다. 손혜원 의원 문제나 일본과 무역 분쟁이 벌어졌을 때도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고, 최근 조국 전 장관 비판 칼럼은 세 번이나 썼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인데 무리한 거다. 그런데 윤지오 사건도 두 번 썼다(웃음). 사실 나 이번 정권에 대한 기대가 컸던 사람이다. 그런데 점점 실망이 커졌다. 저쪽을 적폐로 몰고 집권한 정부면 뭐 하나라도 나은 게 있어야 하는데, 하는 걸 보면 그런 게 없더라. 경제고 외교고 다 엉망이지 않은가. 일본과 갈등도 그렇고, 조국 사태가 그 절정이었다. 정권뿐 아니라 조국을 수호하겠다고 나선 지지자들이 더 문제였다. 그 맹목적인 지지가 진실을 가리게 되니까. 그동안은 (이 정권과 지지자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비판하기로 했다."

―왜 그런 진영 논리에 빠졌다고 보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 같다. 하나는 지금 여권이 집권을 했는데도 여전히 스스로를 소수고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반대편에 있는 다수파 기득권을 끌어내리기 위해선 우리 편이 좀 잘못을 해도 눈 감고 똘똘 뭉쳐야 한다는 거다."

―또 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