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단지 데코레이션이 아닌, 세상을 바꾸는 일"

Q. 80, 90년대보다는 최근이긴 하지만, 아이리버와 삼성 가로본능도 이제는 꽤 예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영세 님이 생각하시기에 과거의 디자인과 현재의 디자인은 개념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한 가지 가벼운 예를 들어볼까요? 에어비앤비의 설립자들이 둘 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의 산업디자인 전공 졸업생인데요. 그 두 사람은 호텔을 디자인하지 않았어요. 대신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시스템을 디자인해서 어마어마한 회사를 탄생시켰죠.

이전까지의 디자인은 ‘How to Design’, 즉 어떻게 만들지에 초점이 가 있었습니다. 그게 스몰 디자인이라면 이제는 ‘What to Design’, 무엇을 만들지가 중요한 빅 디자인의 시대예요.

이 말에 맞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요즘은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꿈을 사람이라면 말이죠. 창업자의 마인드로 스타트업을 설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디자인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뀌고 있어요. 디자인에 대한 니즈가 사업 계획을 그리는 일부터 시작되니까요. 그만큼 디자이너가 남들이 상상하는 게 쉽지 않은 부분에서 부가가치가 더 큰 사업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거기에 바로 스타트업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의 미래가 있습니다.

Q. 현재 한국의 디자인 씬이 처한 현실은 어떤 것 같나요?

기존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 디자인을 새로운 창조의 기회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창의성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 같고요. 독창적인 것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분명 있을 텐데, 가볍고 싸게만 물건을 만들어서 시장에 나가 경쟁에서 자꾸 지면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있을 리가 없죠.

억울하게 묻혀 버린 디자이너들이 있다면 그건 정말 아쉽습니다. 근데 그 이유가 뭘까요?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경쟁을 반복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죠. 늘 ‘Bigger is better, Cheaper is better’였던 겁니다.

이제는 반대예요. 예전에 유리했던 크고 오래된 회사가 오히려 불리할 때도 있습니다. ‘Bigger is better’가 아니라 ‘Newer is better’의 시대예요. ‘Bigger’를 가지고 있으면 ‘Newer’를 못 하니까요. 그래서 젊은 세대의 창업자들이 힘을 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거라고 봅니다.

그 지점에서 작년부터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만드는 김영세 스타트업 디자인 오디션이라는 콜라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참신한 회사들이 꽤 보이더라고요.

그중 어떤 팀은 피트니스 사이클에 관한 아이디어를 냈는데요. 땅의 굴곡, 각도에 따라 시트가 움직이더라고요. 그냥 피트니스 사이클이면 다른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데, 그 팀이 만든 특허와 방식은 독보적이라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런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투자자 이 셋이 만나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Q. 앞선 세대의 디자이너로서 영세 님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바가 궁금합니다.

제가 수십 년 동안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세계 방방곡곡을 다녔는데요. 우리나라는 문화 부분에서 제일 아쉬운 거 같아요. 근데 디자인이 국민적 문화가 될 수 있다면 경제 선진국뿐만 아니라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이에 제가 앞장서서 이제는 산업 전체가 디자인 중심으로 흘러가게 하고 싶어요.

물론, 왜 디자인 중심이어야 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을 텐데요.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재산은 창의력이죠? 로봇이나 AI 같은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는 상상력으로 그것들을 앞섭니다. 상상력이 만들 수 있는 건 뭐죠? 디자인이죠.

그리고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디자인은 꼭 디자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단어가 아닙니다. 누구나 이걸 인식해야 할 정도로 중요성이 대두되었죠. 저는 미래에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창의적인 사람이 우대받으며 돋보이고, 그들이 실력을 발휘해서 돈으로 돌아오며 글로벌하게 성공하는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루어질 수 있겠죠? 꿈은 이루어지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