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저에게 들어오는 인터뷰는 <애비규환>보다는 다른 내용에 집중된다. 최근에 들어온 것도 그랬는데 그 매체는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감독들이 받는 차별과 부당 대우'에 대해 다루고 싶어했다. 나는 내가 겪거나 알고 있는 일에 대해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고 동어반복은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 나보다 더 적합한 인터뷰이가 있을거라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페미니스트'라고 (굳이) 선언한 감독이 드물고 이런 기획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새롭지 않은 피해서사를 재생산하는 답변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고 인터뷰에 응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준비해간 답변들은 그 기획에 적합한 내용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는 원하는 태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편집은 내 권한이 아니므로 해당 컨텐츠에 항의할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많이 달라서 여기에라도 밝혀둔다. 이번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지는 '90년대생' '페미니스트' '여성' '영화감독'인 나에게 들어오는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묻는 내용과 상당 부분 겹쳤다. 그외에 자주 받았던 질문들도 덧붙여 답변을 달았다. 여러분이 원하는 내용이 아닐지 몰라도 이것이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답변이다.

우선 저는 학교를 졸업한지가 꽤 되어 지금의 학내 상황을 충분히 대변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학교를 입학한 2010년 초반과 졸업한 2016년 당시의 분위기는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졸업한지도 5년이 다 되어가니 지금은 더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1,2학년 때만해도 ‘마초’를 자처하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마초야, 내 현장에 여자는 없어”라고 꼭 제가 들을 수 있는 볼륨으로 말하던 사람도 있었고요. 저는 그 '마초'라는 말이 좀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똑같은 뜻을 가진 다른 단어로 보통 '여성혐오자'라는 말이 쓰이는데, "영화과에서 제일 가는 마초"를 자처하던 사람들이 더는 “나는 영화과에서 제일 가는 여성혐오자”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요.

십 년 전 “내 현장에 여자는 없어!”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커뮤니티 안에서 배제되기 보다 '형님'으로 칭송받았던 것은, 영화과 안에 남학우들만의 견고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마초’들을 축으로 한 헤게모니가 있었던거죠. 지금은? 예전에는 바로 앞에 앉아있는 여자애가 들으라고 성차별 발언을 대놓고 했다면, 지금은 저 앞에 앉아있는 여자애가 뭔가 들을까봐 조심하는 정도는 되겠죠.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나는 마초야!!!"라고 속삭이든지요. 저는 이게 꽤나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더디고 부침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그걸 지운 채로 십 년 전 일을 끊임없이 조명하는 건 별 의미 없어 보입니다.

(이것도 너무 옛날 이야기고, 지금은 훌륭한 여자 감독들이 두각을 보이는 게 아주 이례적인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해당 내용은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남성’ 영화인과 ‘여성’ 영화인, 각각이 가진 차이라던가 그 두 부류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 감독’과 ‘여자 감독’이 있는 게 아니라, ‘감독’과 ‘여자 감독’이 있는 거죠. 다른 많은 직업들이 그렇지만 감독의 디폴트 성별은 남성이고, 그들은 보편적 인간이면서 개인일 수 있지요. 그래서 남자가 가진 결함은 개인의 문제가 되지만, 여자가 가진 결함은 ‘여자의 결함’으로 치부됩니다.

5년 전 일이고, 당시 저는 아주 공격적인 사람이었고, 그 배우모집공고를 쓰신 분이 요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알지 못합니다. 그 당시의 대응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 일화를 2017년 씨네21 대담에서 언급한 것은 후회하고 있어요. 사람은 공부하고 나아지면 됩니다.

가장 난감한 질문입니다. "없었다"고 말하면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을 지우는 방향으로 읽힐 여지가 있고, "(조금이라도)있었다"고 말할 경우 답변이 확대 해석되어 영화를 함께 만든 동료들에게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화기애애 하기만 한 현장이 어디 있겠습니까~~~~"하고 넘기곤 했습니다.

다만 여성감독들이 이중의 의심과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직업군에서 여성 감독의 지위가 동등할 리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도 동료 사이에 갈등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 그 갈등이 나라는 개인의 문제인지 내가 약자라서 겪는 차별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요. 차별은 얼마든지 교묘하고 모호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감독님이 여자고 나이가 어려서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건 자격지심입니다"라고 말하면 거기서 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요? 일단 '자격지심'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스라이터라는 점만이 확실합니다.

2015년에 초고를 쓴 시나리오고, 그 당시에는 페미니즘 의제를 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그냥 저에게서 가장 친숙하고 가까운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 사이 격동의 세월이 흐르고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의 이슈가 다양해지면서, 여성서사에 기대하는 바도 자연히 그 흐름을 따르게 되었죠.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이야기인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애비규환>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점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있었고, 그걸 고수하고 싶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고 가부장제를 박살내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실망한 관객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그 감상도 충분히 이해되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떤 작품이 반드시 이즘의 최전선에 위치해야만 의미가 성립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동시에 페미니스트 관객들의 비판도 납득하고, 그 비판들이 앞으로 나올 여성 서사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