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김세린, 권수진

사진 제공: 김을지로


서론

[페디소 인사이드]는 디자이너 눈에만 보이지만, 알고 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이번 [페디소 인사이드]의 주제는 ‘생산자로서의 디자이너’로, 자신에서 출발한 무언가를 직접 생산하길 욕망하고 실행하는 생산자로서의 디자이너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페디소 인사이드' 네 번째 주인공은 3D 아티스트 김을지로 님입니다. 김을지로 님은 작가와 디자이너의 포지션을 오가며 3D 그래픽 위주의 작업을 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산 사람 빼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자칭 타칭 3D 연금술사, 김을지로 디자이너와 함께 최근에 참여한 〈Quarantine Etudes〉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더불어 3D로 자신의 욕망과 흥미를 시각화하는 ‘생산자’로서의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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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Quarantine Etudes〉 (2020)**

Q. 〈Quarantine Etudes〉 작업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Quaratine Etudes〉는 음악가이자 기획자 영 다이(yeong die)님이 저와 개발자 한 분에게 함께 작업 하자고 제안해주셔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입니다. 전례 없는 이 코로나 시대에 ‘자가격리'와 음악가들이 가지는 ‘연습'이라는 훈련의 기간이 닮아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해 가상에 펼쳐지는 공간 속에서 5명의 뮤지션은 각자의 연습곡을 공개합니다. 이 가상의 텅 빈 공연장에서 관람객은 마음껏 뛰거나 소리를 내며 돌아다닐 수 있고, 음악가 5명의 연습곡을 감상할 수 있어요.

원래 이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와 서울문화재단의 공간에 대한 지원사업 아이디어였어요.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서 공간을 가상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그 가상공간을 설계하는 일을 제가 맡게 된 거에요. 가상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자는 것에서 출발했어요. 전반적인 기획은 영 다이 님이 하셨고, 가상의 개념을 얼마나 가져와야 적당한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어요. 본 프로젝트는 11월 한 달간 정해진 두시간씩만 오픈되었는데, 무궁하고 정적인 가상의 속성을 현실의 선형적 시간에 선택적으로 데려다 놓는 방식을 통해 관람객의 경험에 침투하기를 꾀했습니다. 이런 지점들이 가상공간의 특징과 현실이 맞닿을 때 생기는 글리치1️⃣에 대한 고민을 통해 계획할 수 있었던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aside> 1️⃣ 글리치(Glitch): 시스템이 본래 의도된 값이 아닌 다른값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일시적인 오류.

</aside>

Q. 이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전체 과정이 궁금합니다. 기획부터 제작, 실제 공연 오픈까지 총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전체 프로젝트의 기간은 2020년 5월부터 11월까지예요. 그 기간 동안 이 작업은 저에게 거의 체화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처음에는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진행했어요. 3D 작업을 진행한 기간은 6월부터 9월 말까지예요. 다시 돌아보니까 꽤 오래 진행한 프로젝트더라고요.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워크플로우가 없던 형태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고, 저희 중에 실제로 이런 작업을 해본 전문가도 한 명도 없었어요. 저는 3D를 하던 사람이고, 개발자분은 개발만 하시던 분이고, 영 다이님은 음악을 하시는 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여러 가지 채널로 동시에 진행해 나갔어요. 저는 공간 구성과 색감 등 시각적인 요소를 발전시키다가, 게임개발로 이어질 때 기술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체크하면서 진행하고, 개발하시는 분은 이에 따른 피드백과 더불어 유저 사용성에 관한 인사이트를, 영 다이님은 시각과 청각 중 어디에 얼만큼 균형을 둘지 등 전체적인 구색을 조율해 주시는 역할을 담당하셨어요. 전체 프로젝트 기간은 길지만, 각각의 작업이 닿는 부분은 간헐적이어서 체감상 작업 기간이 엄청나게 길었던 느낌은 아니었어요. 커다란 맥락 아래서 각자 작업하다가 종종모였다 흩어지는 느낌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한두 달엔 베타테스트와 대망의 오픈을 위해 열심히 소통했죠.

Q. 유례없는 팬데믹 시대에 격리의 시간과 홀로 감내하는 음악가의 연습 시간이 닮아있다는 점에 기인하여, 가상의 공간에서 텅 빈 공연장을 만들고 거기서 특정 시간대에 음악가들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기획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설산의 로딩 이미지를 지나 공연장이 펼쳐지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이런 비주얼 콘셉트를 어떻게 설정하셨는지 궁금해요.

전체적인 공간에 대한 구상은 영 다이 님이 하셨고, 구체적인 부분들을 함께 의논하면서 발전시켰어요. 사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같은 클래식한 공연장에 타 장르의 음악가가 입성하기는 굉장히 힘들잖아요. '현실에서 가기 어려운 곳'을 큰 주제로 구체화했습니다. 나아가 이 공연장이 펼쳐지는 곳이 가상공간이다 보니까 기존의 공연장의 모습을 화려하게 구현할지, 서슴없이 파괴할지 등의 정도의 무게에 관한 고민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거기서 파생되어 로딩 이미지가 설산이 되었어요. 웅장하고 가기 쉽지 않은 곳.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갈 수는 없는 곳. 그렇기 때문에 진짜 있을 것만 같은 곳. 이 시기에 영 다이 님의 뮤직비디오 작업도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덕분에 기획자인 영 다이 님과 많은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었고, 미감이 거의 동기화된 상태였어요(웃음). 같이 영화 〈샤이닝〉의 분위기를 이야기하다가 설산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영화 속에 아이가 자전거 타고 다니는 카펫 같은 것 좋겠다는 이런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콘셉트를 구체화해 나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