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퇴사해요”

또 동료가 떠난다. 요즘은 누가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동으로 축하한다는 말부터 나오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의 퇴사 소식에는 괜히 마음이 헛헛해진다.

인턴 시절 처음으로 퇴사한 동료에게 정성 들여 손 편지도 쓰고 선물도 골랐던 기억이 난다. 가까웠던 상사가 그만둘 때는 눈물도 좀 흘렸고, 나랑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료라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구석이 어쩐지 허전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뎌질 때도 됐다. 10년 동안 스쳐 지나간 동료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14년 동료의 퇴사파티 때 적은 낙서

2014년 동료의 퇴사파티 때 적은 낙서

강의하다 보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과 주니어를 많이 만나는데, 그때마다 업계 진입장벽이 높다는 얘기를 듣는다. 정보도 부족하고, 이렇다 할 커뮤니티도 별로 없고, 채용 공고를 찾기도 어렵다고. (이러니 공사모와 김치앤칩스가 얼마나 소중한가!)

이렇듯 역량과 열정을 가진 인재들이 국제개발협력 업계에 들어오고 싶어서 열심히 틈을 찾고 있지만 업계 종사자라면 알리라. 우리 업계를 찍먹(?)하고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렵게 겨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1년도 채 안 돼서 떠난다. 충분한 지식과 역량, 경험으로 열정을 다해 일하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직이 아니라 아예 업계를 뜬다. 심지어 질려서,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으로.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코로나19와 이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가로 조직문화와 HR 트렌드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사람이 기업과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면서, 인재가 이탈했을 때 소모되는 에너지와 비용을 둘러싼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취업 빙하기라고 하지만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와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해 인재 확보에 애쓴다. 채용 브랜딩, 인재 유지(Talent retention) 전략 등으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하고 조직 내 머무르게 하고자 한다. 성공적인 비즈니스와 성과 창출을 위해 인재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반응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 업계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을 뽑아놓고 결국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까?

(그림 출처: AIHR)

(그림 출처: AIHR)

나는 국제개발협력 업계에서만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다른 업계의 회전율(?)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 업계에서 직원 유지율(employee retention)은 매우 저조하다. 정규직 대비 계약직이 많으니 오래 일하고 싶어도 고용 조건이 받쳐주지 않고, 업무 강도 대비 보상체계가 미흡해서 근속 기간이 짧아지기도 한다. 시장 자체가 좁아서 이직할 곳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그럼, 이 업계 기관과 조직들은 오래 일한 인재들을 붙잡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대부분 조직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일 뿐이다.

비즈니스 모델상 한계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아직 우리나라의 국제개발협력 시장은 공공자금에 크게 의존하고 품질보다는 단순 실적 중심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기업과 조직이 인재에 들이는 추가적인 투자는 그만한 수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업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일할 주니어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보상으로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하기보다 최저임금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사람을 찾고 만다. 그만두면, 또 뽑으면 된다. 슬프게도 이것이 우리 업계의 현실이다.

그러니 7~10년 정도 경험을 가진 귀한 중간 관리자를 찾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고, 이제 막 진입한 주니어들은 자기 역량 이상의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번아웃으로 업계를 떠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업계 10년 차인 내가 인턴일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최저임금 뿐이지 않나 싶어 속상하다. 소 잃고서라도 외양간을 고치면 좋을 텐데. (우리가 소는 아니지만, 소처럼 일하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앞으로도 쉽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우리 업계의 노동 환경.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보잘것없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