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일본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46(乃木坂46)의 1기 멤버였던 하시모토 나나미(橋本奈々未)의 은퇴 사유는 ‘벌 만큼 벌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아이돌을 돈벌이로 여겼냐는 질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대학 시절, 연예인이 된다면 맛있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디션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했고 인기가 최절정에 달하던 2016년 돌연 연예계 은퇴를 발표했다. 집안의 빚을 다 갚았고 동생의 학자금도 마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돌 활동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그녀는 지금까지도 대중매체에 노출되지 않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평소 그녀는 방송에서 짓궂은 농담을 즐기고는 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천국은 어떤 곳이냐’는 한 초등학생의 질문에 ‘우리는 어떤 곳이 천국이고 어떤 곳이 지옥인지 모르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옥일지도 모른다’고 대답한 것이다. 호기심 어린 아이에게 현실 이상의 대답을 한 것이 과연 웃을 일인지는 조금 생각해볼 문제이기는 하지만, 드문드문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하나의 산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모두가 동경하고 모두에게 꿈을 나누어 주고 – 우상이라는 뜻을 전하는 아이돌(idol)이 ‘벌 만큼 벌었다’는 이유로 떠나는 연예계라는 곳은 과연 그녀에게 천국이었을까, 지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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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협력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으레 미덕처럼 여겨지는 자세는 그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 역시 1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많은 부분이 한국보다 편하기도 하고,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현장을 사랑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파견 생활과 업무를 이어 나가고 있다. 비록 누구도 부탁한 적 없지만. 끝없는 사업 모니터링과 분기별 보고서 그리고 한 푼 한 전의 영수증들이 향연을 이어가고, 때로는 어른의 사정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결정에 속앓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 땅을 천국이라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진행하고 있는 이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이 나라의 사람들도 과연 이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할까? 오히려 그들에게는 이곳이 지옥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해결하고자 지금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고 있던 게 아닌가? 나에게는 천국인 이곳이 그 나라 사람에게는 지옥이지 않을까?

실제로 얼마 전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외국인 친구가 SNS를 통해 모국의 혼란스러운 소식을 전하면서, 돈 많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고 가난한 사람에게만 불행이 펼쳐지는 지옥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 내가 보기에는 지옥이나 다를 것 없던 곳이 내 친구에게는 계속 머물고 싶은 곳이었고, 내가 천국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곳은 다른 이에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정말 지옥이고 어디가 천국이란 말인가? 하시모토 나나미의 말처럼 어떤 곳이 천국이고 지옥인지 모르는 우리는 각자의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근 UN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에서 3월 20일 국제 행복의 날을 맞이하여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3)를 발표했다. 한국은 137개국 중 57위를 차지했고,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OECD 가입 38개국 가운데서는 35번째를 차지했다. 기대수명, 건강, 1인당 소득, 사회적 지원 등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한다고 한들 한국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은 조금 설득력 있어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기준과 평가가 모두의 공감을 사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지옥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 결과를 부정하기 어려웠다. 아무렴 1위를 차지한 핀란드를 지옥으로 여기는 자국민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지옥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고작 이런 지옥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 인류는 문명을 개척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그런 이유로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내가 당장 머무는 이곳만이 천국이라는 오만한 생각은 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지옥이고 어디가 천국인지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옥일 수도 있다는 하시모토 나나미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그리고 그녀가 천국을 바라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던 노기자카46가 2023년 3월 29일 발매할 32번째 싱글, 야마시타 미즈키가 더블 센터를 맡은 <사람은 꿈을 두 번 꾼다(人は夢を二度見る)>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며 다짐한다. 나의 미즈키짱이 살아갈 이 세상만큼은 지옥이지 않기를, 그러기 위해서 나의 이 활동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노기자카공사중(乃木坂工事中)>의 방송 화면 캡쳐 (2023년 2월 19일 방송) (출처: Ameba)

<노기자카공사중(乃木坂工事中)>의 방송 화면 캡쳐 (2023년 2월 19일 방송) (출처: Ame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