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해외 파견 중 참 마음을 아프게 한 말이 있다.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가 파견을 종료하며 한 말이었다. “개발협력 분야는 꼭 나의 짝사랑 같았던 것 같아요. 아무리 좋아서 가까워지고자 해도, 상대가 날 멀리하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다가가서는 안돼요.”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가? 그리고, 모두가 사랑의 감정을 정말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누군가를 열렬히 짝사랑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이 비유는 참 내 마음을 관통하는 표현이었다.

그리고 그 동료는 과감히 이 분야를 떠났다. 정말 사랑하는 분야였고 함께 하는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일에 고민하고 현지인들과 공감하며 열정을 쏟았지만, 그 결과가 동료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였던 탓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의 한 마디가, 오늘 파견을 마무리하려는 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요동치게 한다. 나의 개발협력은 나 혼자서 하는 짝사랑이었을까? 아니면, 함께한 사랑인 것일까? 한 발짝 더 나아가 식어버린 사랑은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삶의 우선순위도, 열정의 정도도,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애착도 모두 달라졌다. 내가 가진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외로움과 고생도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편안한 삶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며, 돈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는 추잡하고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침 일찍 크롬을 켜서는 원 달러 환율을 확인한다. 퇴근시간만 바라며 일 할 때가 많고, 나에게 야근은 따분한 것이며, 피로감을 잊게 하는 열정은 식은지 오래다. 퇴근해서는 파견 복귀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한국에서의 따뜻한 국밥 한그릇과 소주 한잔을 그리워한다. 영상통화를 할 때면 늘어 보이는 부모님의 흰머리와 주름이, 그리고 2년간 변변한 데이트도 못하고 기다리게만 한 오랜 내 반쪽이 이제는 더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개발협력에 대한 내 사랑이 변한 이유를 찾다 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나는 개발협력을 사랑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다.

그래, 개발협력과 나의 관계가 완벽한 연인이 아니었을 지라도 사랑하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은 분명하다. 나에게 개발협력은 내 삶의 우선순위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해주었다. 만약 경험하지 않았다면, 내게 있어 무엇이 소중한 가치인지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내가 한 사랑은 나를 또 다른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주었고,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게 해준 것이다. 이제는 다시 한번 새로운 상대와 열렬히 사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찌됐든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니까!

그렇지만, 오랜 사진첩이 주는 향수와 같이, 아마도, 지금의 시간, 온도, 분위기와 감정들은 평생 불현듯 스쳐지나 갈 것만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이 준 깨달음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