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언제나 아름답게 왜곡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첫사랑은 언제나 한없이 투명하게 느껴지고 젊은 날의 지난 청춘은 아스라이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망울진다. 그럼에도 2014년 11월 처음 보았던 걸그룹 러블리즈의 데뷔 티저 영상은 변함없이 아름답지만, 우리는 알지 않은가. 이 시대의 수많은 꼰대들이 ‘라떼’를 마시고 있는 이유는, 그들 역시 “나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기억의 왜곡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라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과거가 아름다웠을 리가 있겠나,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것 뿐이지.

2013년, 나는 우연한 기회에 국제개발협력을 알게 되었다. 유사 전공도, 이렇다 할 대외 활동도, 하다못해 공인된 영어 성적 하나 없던 내가 이 바닥에 발을 담그기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소개하게 되겠지만, 그때는 정말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작은 인연이라도 만들려고, 조금이라도 정보를 더 얻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깨달았다. 나도 나의 과거 사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있구나. 사실 나는 그렇게까지나 많은 노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 시간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나 역시 전형적인 일못러(일 못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당시 나는 국제개발협력 관련된 모임이라는 모임에는 전부 참여를 했다. 물론 그런 열정과 그 원동력의 팔 할쯤은 모임이 끝나고 있을 뒤풀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을 귀담아듣는 것은 마치 내가 뭐라고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30년 넘게 삼시 세끼 밥 챙겨주며 키워준 부모님께 효도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날 역시 여느 때처럼 한 소셜 비즈니스 컨설팅 기관에서 주최한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하필이면 해당 기관의 연구원님과 마주 앉게 되었는데, 기억은 언제나 아름답게 왜곡되는 탓에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나지는 않지만, 영양가 있는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설령 미화는 되었을지언정 왜곡은 되지 않았을 그분의 온화한 미소만큼은 확실히 기억나는데, 명함 한 장을 주시며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정말 편하게 자주 메일을 드렸다.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이 이어지자 몇 개월 뒤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처음 뵈었을 때는 ㅇㅇㅇㅇ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그 부분을 넘어서 업무와 관련된 고민을 하시시는 것이 멋져 보입니다.” 세상에! 내가 연구원님과 같은 전문가에게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다니! 괜히 어깨를 으쓱거려보다가 -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니,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연구원님에게 ㅇㅇㅇㅇ에 대해서나 물어봤다니, 정말이지 너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어떻게 국제개발협력을 한다는 놈이 ㅇㅇㅇㅇ도 모르고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때 연구원님은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이러한 생각은 불필요합니다) 짧은 격려 한 번 받았을 뿐, 나는 그저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ㅇㅇㅇㅇ도 모르던 일못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8년이 흘렀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처럼, 꾸역꾸역 파견 생활을 버티다 보니 어느새 나는 프로젝트 관리자가 되었다. 실무와 관리의 영역을 오가면서 여러 일을 처리하면서 많은 강연과 이론에서 접해온 일들을 하나둘 모두 겪고 있다. 이 세계의 생태를, 이 분야의 방식에 적당히 익숙해졌다. 예상치 못한 혹은 결국 예상했던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초연하게 대처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며 넘쳐나는 자존감을 연신 내뿜고 있을 때였다. 본부로부터 한 기업과 함께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엣헴, 어떤 기업인가요? 라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국내의 소셜 비즈니스 컨설팅 기관이라는 답변이었다. 그렇다, 8년 전 내가 연구원님께 ㅇㅇㅇㅇ을 물어봤던 그 기관.

서둘러 사업 담당자를 보았고, 그때 그 연구원님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려다가 덜컥 8년 전 그 메일이 떠올랐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그 메일 계정 깊숙한 곳에 남아 있을 나의 메일들. 나는 잠시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해당 기관과 함께 사업을 하게 된 것은 분명히 나에게도, 우리 기관에도 좋은 기회다. 그리고 우리 기관을 믿고, 나를 믿고 사업을 제안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의 흑역사를 알고 계시는 분과 일을 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걸까?

어디에서 누굴 만나든 끝나고 있을 뒤풀이만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다

어디에서 누굴 만나든 끝나고 있을 뒤풀이만 생각하는 건 변함이 없다

8년 만에 그분께 메일을 드렸다. 우리가 주고받았던 메일의 스레드에 이어서. 그때의 그 일못러가 저라고, 그때 하나하나 떠먹여 주시면서 저를 이끌어주신 덕분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이제는 한 기관에서 한 지부를 책임지는 관리자가 되었고, 마침내 이렇게 함께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글자 한 글자 누르는 동안 흑역사라고 생각되던 나의 과거가 조금씩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지만, 이내 내 가슴 속에는 또 다른 부끄러움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동안 내게도 일을 못 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잊고 있었다. 이것이 흑역사로 치부되는 그 메일보다 더 부끄럽게 느껴졌다. 누구나 일을 못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본인 역시 일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8년 만에 다시 만난 그 분과의 인연은 또 한 번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 8년이 더 지난 2030년에 이 글을 본다면 나는 또 생각할 것이다. 8년 전에 무슨 이런 부끄러운 개소리를 늘어놓고 놨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있었네! 2022년에도 일못러였네! 이 글을 국제개발협력 모든 일못러에게 바치며, 꼴에 자존심은 있기에 ㅇㅇㅇㅇ가 무엇인지는 절대 밝힐 수 없음을 알립니다.